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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감사절 11월 4번째 주 목요일인 추수 감사절은 미국에서 가장 큰 명절이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야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이 곳에 자리를 잡고 살다 보니 명절은 명절이구나 싶다. 우리 동네만 해도 추수 감사절이 되면 이웃집 앞에 못 보던 차들이 여러 대 주차되어 있고 어둑어둑해지는 오후 4시부터 사람들이 식탁에 모여 만찬 분위기를 내기 시작한다. 왜 이날에는 칠면조를 먹는지도 알 것 같다. 가을이면 살이 토실토실하게 올라온 칠면조 떼가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닌다. 주변에 흔하디 흔한 것이 칠면조인 것이다. 춥고 배고픈 초기 정착민들이 안 잡아먹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미국 온 첫 해에 코네티컷에 사시는 작은 아빠와 작은 엄마가 초대해 주셔서 추수감사절 당일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고속도로로 들어섰었다. 그런데 ..
결혼 기념일 얼마 전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였다. 10번째 결혼 기념일까지는 시간이 더디 가는 듯하더니 그 이후로는 화살처럼 날아가는 세월 따라 내가 다 정신없을 정도로 숫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가고 있다.... 14번째, 15번째, 그리고 올해 16번째. 결혼 초기 홍콩에 머무를 때였다. 큰 아이가 아직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아기일 때 남편은 결혼기념일이라며 선물 상자를 내밀었다. 어느 고급 속옷 브랜드의 보라색 실크 슬립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남편은 분명 인터넷으로 ‘와이프 선물’을 검색해 보았을 테고 늦은 퇴근길에 쇼핑몰 가게로 들어가 어색한 표정으로 직원을 붙잡았을 테며 직원은 친절하게 내 나이대 여성들이 선호하는 값비싼 속옷들을 매장 테이블 위 여기저기에 펼쳐놓았을 것이다. 예쁘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손에 쥐었을..
옛 친구 친한 동생 K가 오랜만에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이런저런 마음고생과 수많은 고민들로 점철된 그런 대학원 시절을 함께한 사이이다 보니 특별하게 마음이 더 가는 동생이다. 게다가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배울 점이 많고 현명하며 내가 힘들었을 때마다 의지를 많이 했던 그런 동생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데, 작년 말에 아이 둘을 데리고 이곳에 와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 왔을 때야 이런저런 계획을 많이 세워놨겠지만 현 상황에서는 그저 충분한 휴식과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것으로 목표를 재수정한 상태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K가 여기에 머무르면 함께 할만한 것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놓았었는데, 안타깝게도 제대로 한 것이 거의 없다. 심지어 요즘 상황에서는 조심스러워 얼굴 한번 보는 것도 쉽지..
늦가을의 풍경 아침에 일어나 창문 밖을 내려다본 나는 나도 모르게 헉! 하고 외마디 소리를 내었다. 지난밤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떨어진 낙엽들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수많은 낙엽이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이 괜스레 낯설었다. 내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는 모든 것이 유난스러워 보인다. - 와~ 저거 언제 다 치우냐. 내 외침 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 이 날 오전에 낙엽 치우는 아저씨들이 왔다. 이 분들은 봄, 여름에는 2주마다 우리 집 마당의 잔디를 깎아주고, 가을과 봄에 각각 한 번씩 낙엽 청소도 해 준다. 그런데 올해는 나무에 붙어 있는 잎들이 아직 저리도 많은데 너무 일찍 낙엽을 치우러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들이 돌아간 후 우리 집 마당은 아주 잠시 깨끗해졌으나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들로..
집수리 아무래도 이곳은 오래된 주택들이 많다 보니 일 년에 수리해야 할 것이 늘 한 두 가지씩 생기게 된다. 얼마 전에는 낡은 워터 히터를 교체했었고, 이번에는 싱크대에 있는 garbage disposal을 교체하였다. garbage disposal은 음식물 찌꺼기를 분쇄하는 장치인데 미국 가정집에는 많이 보편화되어 있다. 워터 히터를 교체해주셨던 아저씨가 garbage disposal을 바꿔주셨다. 우리 동네 주민인데, 몇십 년 경력에 이 동네에서 꽤 평판도 좋은 분이시다. 이스라엘의 전문학교에서 배관 기술을 배웠다던데 본인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크단 이야기를 들었더랬다. 미국은 인건비가 워낙 비싸서인지 배관공, 전기공 등등 숙련된 기술자들의 수입이 상당히 좋다. 어떤 분야이든 직업에 귀천 없이 기술과 경력에..
School Picture Day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TV를 틀 때마다 연일 대선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대선이 며칠이나 지난 오늘에서야 대통령 당선 확정 소식이 들렸다. 빠른 시일 내에 미국이 안정화되길 기대하지만, 정권 이양이나 다시 치솟는 COVID 환자수 등 산적한 문제가 많다 보니 당분간 사회가 꽤나 어수선할 것 같다. 그냥 평소대로 조용히 집과 마트만 왔다 갔다 해야겠다. 세상은 이리 시끄럽지만, 우리 집의 평범한 일상은 계속되고 있다. 매년 이맘때에 학교에서 아이들 사진을 찍는다. 전문 사진사가 와서 개인 사진도 찍고 반 전체 사진도 찍어 주는데, 미리 내가 원하는 사진 패키지를 골라 요금을 내면 얼마 후 아이들 사진을 받아 볼 수 있다. 매년 아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남길 수 있는 데다 요금의 일부는 학교에 ..
핼로윈 미국에서 10월의 마지막 날은, 핼러윈이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아이들이 핼러윈 복장을 하고 학교에서 관련 행사를 하고, 저녁 때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trick or treat을 하는 것들이 솔직히 부담스럽고 못마땅하였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솔직하게 엄마는 핼러윈이 싫지만 너네가 원하니까 해주는 거라고 이야기하곤 하였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맞춰주며 살다 보니 요즘엔 나도 은근히 즐기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물론 호박 속을 파내고 조각하는 것은 뒤처리가 힘들고 결국 모든 것이 내 담당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 더 이상 호박 조각은 안 하고 있다. 그래도 집에 커다란 거미와 거미줄을 달아놓는다거나 실내 호박 장식, 그리고 현관문 앞에 호박 달린 가을 리스 정도는 걸어둔다. 핼러윈 유래를 따지자..
동행 - 우리 얼굴 못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언제 얼굴 한번 봐요. 성당 자매의 연락을 받고 나는 얼른 약속 시간을 잡았다. 평소라면 주일마다 성당에서 얼굴 보고 인사 나눌 수 있었겠지만, 3월 이후로는 온라인 미사를 드리는 중이라 자매의 얼굴을 못 본 지 반년이 넘었던 터였다. 자매는 몇 년째 폐암 투병 중이다. 미국에 유학 와서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남자아이 둘을 낳았다. 그 아이들은 내 주일학교 학생들이었고, 우리 딸아이는 자매의 한글학교 학생이었다. 몇 년 전에는 학군 좋기로 유명한 동네에 마음에 드는 집을 구입하였고, 집수리, 이사 등등의 문제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나 역시 현재의 집에 들어와 산지 얼마 안 되었던 때인지라 우리는 서로에게 해 줄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면서 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