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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옛 친구

친한 동생 K가 오랜만에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이런저런 마음고생과 수많은 고민들로 점철된 그런 대학원 시절을 함께한 사이이다 보니 특별하게 마음이 더 가는 동생이다. 게다가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배울 점이 많고 현명하며 내가 힘들었을 때마다 의지를 많이 했던 그런 동생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데, 작년 말에 아이 둘을 데리고 이곳에 와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 왔을 때야 이런저런 계획을 많이 세워놨겠지만 현 상황에서는 그저 충분한 휴식과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것으로 목표를 재수정한 상태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K가 여기에 머무르면 함께 할만한 것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놓았었는데, 안타깝게도 제대로 한 것이 거의 없다. 심지어 요즘 상황에서는 조심스러워 얼굴 한번 보는 것도 쉽지 않던 터였다.

      

그러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시간을 틈타서 모처럼 긴 수다를 떨기 위해 우리 집을 방문한 것이다.

 

 

뒷마당에서의 커피 타임

 

 

 

동네 산책

 

 

오랜 친구와 터놓고 나누는 얘기들은 가슴속에 막혀있는 무엇인가를 시원하게 뚫어 준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와는 참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구나 싶다. 

 

- 친하게 지내자며 찾아온 한국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더라고요.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한국에서는 어디 살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전공이 무엇인지, 무슨 대학 출신인지, 남편은 뭐하는지, 왜 여기 같이 안 왔는지, 정치 성향이 무엇인지 등등... 물어보는 대로 대답은 해 주었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이런 질문들로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K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나에게 말하였다.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겠지만 낯선 미국 땅에서 낯선 한국 사람들의 낯선 질문들에 꽤나 당황스러웠나 보다. 이 친구의 이야기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잘 알려면, 우선 무엇을 알아야 할까. 그런데 그렇게 해서 우리 같은 중년의 나이에 새 친구를 만들 수 있기나 할까?

 

나에게는 친동기나 다름없는 벗들이 있다. 모두 사회인이 되기 전 학창 시절에 만났고, 어린 마음에 싸우기도 많이 싸웠으며, 서로 너무나 다른 성격과 성향을 지녔기에 함께 나눈 몇십 년 세월 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버린, 그런 벗들 말이다. 지금은 나이가 나이인만큼 사회적 지위에 걸맞게 체면을 앞세우며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끼리는 이미 서로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보였던 철없고, 미숙하며, 실수투성이의 모습이 어떠하였는지를 말이다. '너의 소싯적 비밀을 네 아들딸에게 다 얘기해 버리겠다'는 협박도 안 먹힌다. 서로의 치부에 대해서 더 이상 창피해하지도 않거니와 심지어 당당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같이 있으면 편하다. 그러니까 친구인가 보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앞에서는 나를 온전히 보여주기가 좀 어렵다. 여기 미국에는 친한 지인들이 꽤 있다. 타지 생활에 모두들 외로움을 느끼는지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함께 기뻐하고,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그 슬픔을 나누고 서로 보듬어 준다. 모두 편안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온전히 잘 알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일 뿐이다. 친한 사이이지만 이런 한계가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K는 다음 안식년에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곳 보스턴을 다시 찾을 계획이란다. 7년의 세월은 금방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눈에 띄게 변해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이렇게 옛 친구가 다시 방문해준다면야 세월이 나에게 내뱉을 무지막지한 흔적조차도 무척이나 반가울 것 같다. 소중한 내 옛 친구가 남은 반년 동안 안전하고 무탈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잘 지내다 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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