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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방학 지금은 아이들 학교 2월 방학이다. 이곳은 여름 방학이 거의 두 달이나 되지만 겨울과 봄에는 일주일씩 짧은 방학을 갖는다. 보통 2월 방학 때는 뉴햄프셔에 있는 스키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스키를 타게 하였다. 매사추세츠에도 스키장은 많지만 사람들이 늘 붐비고 눈의 질도 북쪽보다는 좋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무엇보다도 이곳과 뉴햄프셔는 공립학교의 방학 기간이 서로 달라서 우리 애들 방학에 맞춰 주중에 방문하면 매우 한산하고 쾌적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여의치 못하다. 타주를 방문했다가 돌아오면 자가격리도 해야 하고 바이러스 검사도 따로 받아야 한단다. 그래도 가는 사람은 다 가던데, 우리 식구는 소심한지라 올해 2월 방학도 얌전히 집안에 머물러 있기로 하였다. 아이들..
시선으로부터, - 정세랑 저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 작가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참혹한 전쟁, 지독한 가난과 편견, 폭력으로 점철된 그런 모진 세상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이 가족을 이루었다. 생전 제사는 형식일 뿐이라며 반대하였지만 그녀의 후손들은 10주기 제사를 그들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치르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 여성의 발자취를 쫒아 이들은 하와이로 향한다. 책의 첫 장에는 심시선 여사의 가계도가 나온다. 결혼을 두 번 하였고 다른 성씨로 이루어진 가족들이 심시선 여사를 중심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결혼한 자식들에겐 아들 딸들이 있으니 그녀로부터 삼대가 이어진 가계도이다. 그 가계도에서 심시선이란 여성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읽힌다. 또..
음력설 올해의 두 번째 설, 구정이다. 물론 이곳 미국에서는 휴일이 아니다. 아침 일찍 알람 소리에 깨어 주섬주섬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메시지들이 와있었다. 밤 사이에 한국에서 온 메시지들도 있었고 이곳 중국계 엄마들과 내 영어 선생님으로부터의 새해 축하 메시지도 와 있었다. 매년 신정과 구정을 다 챙기다 보니 복을 두배로 받아낸 기분이 든다. 어젯밤에는 친정과 시댁에 화상 통화로 새해 인사를 드렸다. 시댁의 경우는 얼마 전 시아버님 팔순 생신이셨다. 미국에 정착한지도 몇 년이 지난지라 이젠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 남편이 호기롭게 앞으로 더 자주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말씀드렸었건만, 정작 올해 팔순 생신을 직접 챙겨드리지 못하고 전화로만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는 시어머님 생신 때문에 ..
소소한 행복 솔직히 나는 장 보러 돌아다니는 것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꽤 있다지만 요즘 같은 때에는 하도 답답하여 바람이라도 쐴 겸 일부러 장 보러 나간다는 얘기도 하던데, 나는 장 보러 나가고 싶을 만큼 갑갑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가까운 코스코나 일반 마트면 또 모르겠는데 50분 운전해서 가야 하는 한인마트는 특히나 그렇다. 한인 마트에 한번 갈려면 고려해야 할 것들이 좀 있다. 아이들 학교 점심시간 스케줄에 맞춰 점심을 차려줄 수가 없으니 아예 오전 수업만 있는 요일을 선택해야 하고, 출퇴근 정체가 심한 고속도로를 타야 하기 때문에 출발 전에는 구글맵으로 도로 상황을 미리미리 확인해야 한다. 사람들이 주말에 많이 몰리기 때문에 주말은 또 피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주 가지는 못하고 두세 ..
눈폭풍, 수다, 정전 며칠 전부터 이곳에 눈폭풍이 예고되었다. 그리고 일기 예보대로 월요일 아침부터 눈이 흩날리더니 오후에는 강한 바람과 함께 많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보통 이런 날은 아이들 학교가 하루나 이틀 정도 휴교를 한다. 그러나 요즘은 팬데믹으로 온라인 수업에 대한 노하우가 생겨서인지 학교는 열되 모든 학생들의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한다고 미리 통보가 왔다. 어차피 우리 애들은 집에서 전체 온라인 수업을 선택하여 듣기 때문에 이 날이라고 큰 차이는 없었다. 한국에서는 마침 친구들이 집들이 때문에 모인 날이라 오전에는 영상으로 함께 긴 통화를 하였다. 먹고 즐기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는 친구들이라 매년 연말이면 근사한 호텔방을 예약해서 파티를 열고 새해 카운트다운은 해외에 있는 나와 함께 외치곤 하였다(당연하지만 ..
그래도 운동 요즘 친구들과의 화두는 늘 건강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 멋지게, 그리고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자!'라며 대화를 마무리하곤 한다. 멀게만 느껴졌던 중년에 들어선 지 이미 수년이 지났고 이전에는 못 느끼던 몸의 변화가 하루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아이들 시켜 뽑는 게 두려울 정도로 흰머리가 늘어서 슬슬 염색을 시작해야 하나 싶다. 제법 윤기 나고 탄력이 있는 데다 염색을 따로 안 해도 될 정도로 붉은색과 갈색이 조화를 이루어 미용실에서도 칭찬받던 머릿결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노화의 길로 들어서고야 말았다. 게다가 소화장애라고는 겪어 본 적이 없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소화제를 찾게 되었고, 몇 년 전에는 역류성 식도염 진단을 받았다. 의사 말로는 내시경 검사 결과 별 문제는 없는데 심리적 문제일 ..
미국 대통령 취임식 지난 수요일엔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모르긴 해도 전 세계적으로 이날만큼 주목을 받은 취임식은 드물지 않았을까 싶다. 일단 정치에 큰 관심이 없는 나부터도 취임식 전 과정을 지켜봤으니 말이다.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내가 느낀 점은 백악관에서 뭔가 일하는 게 보인다는 것이다. 일단 기자회견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바비 인형처럼 잔뜩 치장하고 나와서(너무 딱 붙는 옷을 입고 나와 내가 다 숨이 막힐 지경) 기자들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거나 회피해 버리는 대변인도 참 마음에 안 들었고 트럼프야 뭐, TV 화면에 등장하면 바로 채널을 돌려버리곤 하였다. 나에겐 지켜보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식권 안에서 일이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그냥 정상으로 돌아온 것뿐..
네 인생의 이야기 - 테드 창 저/김상훈 역 는 현존하는 최고의 SF 작가인 테드 창의 중단편집 에 수록되어 있는 소설이다. 2016년에 드니 빌뇌브 감독의 'Arrival'(한국에서는 '컨택트')이라는 영화로 개봉되기도 하였다. 처음 영화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봐야지 하던 것을 최근에야 실행하게 되었다. 몇 주전, 그러니까 작년 말 한밤중에 이 책을 읽고 나서 소설이 남긴 긴 여운 때문에 나는 한동안 잠이 들 수가 없었다. SF 소설에서 철학적 사유가 이렇게 진하게 묻어 나올 줄은 몰랐다. 네 아버지가 지금 내게 어떤 질문을 하려고 해. 이것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고, 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억에 새겨두려고 하고 있지. ... 이윽고 네 아빠는 이렇게 말해. "아이를 가지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