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핼로윈

미국에서 10월의 마지막 날은, 핼러윈이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아이들이 핼러윈 복장을 하고 학교에서 관련 행사를 하고, 저녁 때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trick or treat을 하는 것들이 솔직히 부담스럽고 못마땅하였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솔직하게 엄마는 핼러윈이 싫지만 너네가 원하니까 해주는 거라고 이야기하곤 하였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맞춰주며 살다 보니 요즘엔 나도 은근히 즐기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물론 호박 속을 파내고 조각하는 것은 뒤처리가 힘들고 결국 모든 것이 내 담당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 더 이상 호박 조각은 안 하고 있다. 그래도 집에 커다란 거미와 거미줄을 달아놓는다거나 실내 호박 장식, 그리고 현관문 앞에 호박 달린 가을 리스 정도는 걸어둔다. 

 

핼러윈 유래를 따지자면 우리나라 동짓날 팥죽을 먹거나 정월 대보름날 쥐불놀이를 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한국에서도 몇 년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인 것 같던데, 사실 미국의 핼러윈은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행사이다. 기괴한 귀신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개인적으로 별로이지만 기발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분장한 것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분장을 하고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trick or treat으로 얻는 사탕과 초콜릿은 사실 공짜가 아니라 노동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10월 한달만 우리집에서 거주하는 자이언트 거미 4마리.

 

 

 

가을 리스

 

 

나는 우리 아이들이 핼러윈 당일날 입을 복장을 위해 기꺼이 아이디어 및 물질적 도움을 제공한다(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핼러윈 복장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작년만 해도 큰 아이는 이제 컸다고 친구들과 똑같은 테마로 핼러윈 복장을 맞춰 입고(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잘 모르겠는 만화 캐릭터들...), 고급 초콜릿과 사탕을 나눠주는 것으로 유명한 동네로 친구들과 함께 원정 나갔다. 둘째 아이의 경우는, 그냥 동네 친구 몇몇을 불러 우리 집에서 플레이 데이트 겸 간단한 스낵 파티를 한 후 다같이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왔다. 나는 늘 아이들이 모아 온 초콜릿과 사탕 중에서 스무 개만 고르도록 한 후 나머지는 다른 곳에 기부한다는 원칙을 세워놓았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펜트리에 숨겨놓고 저녁에 당떨어질 때마다 아이들 몰래 야금야금 먹게 되었다.

 

 

 

할로윈 초코 머핀

 

 

물론 올해는 예년과 다른 핼러윈이 되겠다.

이미 몇 주전부터 아이들에게 올해 핼러윈은 집에서 가족끼리 보낼 것이며 누가 찾아와도 사탕과 초콜릿을 나눠주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아이들도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작은 아이는 금요일 온라인 수업 중에 핼러윈 파티를 한다길래, 집에 있는 믹스를 이용하여 급하게 초코칩 머핀을 구워주고 작년에 파티할 때 쓰다 남은 장식을 꽂아 주었다. 나처럼 대충 하는 엄마들이 대부분이겠거니 했는데, 반 아이들이 홈메이드 스낵을 줌 카메라 앞에서 자랑하는 것을 보니 이 와중에도 몇몇 엄마들은 꽤나 정성을 보였다. 아, 나도 몇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알고 있었는데 신경 좀 써 줄 걸 싶었다.  

 

 

 

할로윈 아침 우리집 뒷마당 풍경

 

 

남부에 상륙한 허리케인이 천천히 미국 동부 해안을 따라 북상하고 있고 여기 보스턴에서 찬 기운을 만나면서 꽤 많은 눈을 뿌릴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핼러윈 바로 전날 엄청난 눈이 내렸다. 문제는 나뭇잎이 아직 다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린 습한 눈이라서, 나뭇가지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져 전선을 건드리게 되면 정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불길한 예상대로 금요일 오후에 우리 집 전기가 나가고 말았다. 다행히 두 시간 만에 복구되기는 하였다. 그래서 중년의 어른이 된 나에게는, 눈이 예전처럼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온 가족이 토요일 아침, 그러니까 핼러윈 아침에 산책을 다녀왔다.

한참 단풍 구경을 해야 할 시즌인데 눈 구경이라니 많이 낯설기는 하다. 그래도 또 나름의 색다른 맛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흰 눈을 밟으며 신나라 하였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색색의 단풍나무 숲과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언덕은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웠다.  

 

핼러윈 저녁에는 보통 6시부터 아이들이 현관문을 두드리며 "trick or treat!"을 외친다. 아무 집이나 두드리는 것이 아니다. 현관 앞에 불이 켜져 있으면 환영이라는 뜻이니 문을 두드려도 되지만, 불이 꺼져 있으면 그 집은 지나치는 것이 관례이다. 올해 나는 우리 집 현관 불을 밝히지 않았다. 핼러윈 복장을 하고 지나다니는 몇몇 가족이 보이긴 했지만, 예년에 비해서는 확실히 거리가 조용했다.

 

 

사탕 대신 훠꿔~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중행사인데 이렇게 지나가는 것이 아쉽긴 했다. 게다가 그 좋아하는 사탕이나 초콜릿을 미리 사놓지도 않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대신 저녁으로 우리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하는 훠궈를 해 주었다. 배추, 쑥갓, 팽이버섯, 파, 고구마, 새우, 소고기, 만두, 두부 어묵, 게맛살, 국수로 배 터지게 먹고 나니, 불룩한 배를 두들기며 까짓것 이러면 됐지 뭐가 아쉽나 싶었다.

이렇게 올해의 핼러윈은 무탈하게 지나갔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수리  (0) 2020.11.11
School Picture Day  (0) 2020.11.08
동행  (0) 2020.10.30
아이들 정기 검진  (0) 2020.10.28
농장  (0) 2020.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