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동행


- 우리 얼굴 못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언제 얼굴 한번 봐요.

 

성당 자매의 연락을 받고 나는 얼른 약속 시간을 잡았다. 평소라면 주일마다 성당에서 얼굴 보고 인사 나눌 수 있었겠지만, 3월 이후로는 온라인 미사를 드리는 중이라 자매의 얼굴을 못 본 지 반년이 넘었던 터였다. 

 

자매는 몇 년째 폐암 투병 중이다. 미국에 유학 와서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남자아이 둘을 낳았다. 그 아이들은 내 주일학교 학생들이었고, 우리 딸아이는 자매의 한글학교 학생이었다. 몇 년 전에는 학군 좋기로 유명한 동네에 마음에 드는 집을 구입하였고, 집수리, 이사 등등의 문제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나 역시 현재의 집에 들어와 산지 얼마 안 되었던 때인지라 우리는 서로에게 해 줄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면서 서로 가까워지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 자매는 담담하게 나에게 이야기하였다.

- 나 암 이래. 폐암. 척추까지 전이된 줄도 모르고 있었네.

 

자매는 만날 때마다 활기차 보였고 늘 그렇듯이 의욕과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그러나 약물 치료의 부작용 탓인지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언제부터인가 털실로 짠 모자로 머리를 가리기 시작하였고, 얼굴빛은 어두워져 갔다.

 

- 남편이 머리 밀어줬어. 나는 괜찮던데 우리 남편은 울컥했나 봐. 나중에 보니 내 머리카락을 모아서 서랍 안에 넣어놨더라고. 보기 싫게 말이지. 그래서 내가 그랬지. 어이구 그냥 있을 때 좀 잘해! 

 

이번에 가서 보니, 빠졌던 머리카락은 새로 자라나고 있었다. 약물 치료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의 치료는 더 이상 듣지 않고 있으며, 암은 이제 온몸으로 전이된 상태라고 하였다. 이번에 새로운 임상 실험에 참여하기로 했다는데, 그러면 지금의 머리카락은 또다시 빠질 것이라고 했다. 

 

 

 

 

 

 

산책 중에 찍은 꽃들

 

 

우리는 자매 집 동네를 산책 삼아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고 나서 집 앞 뜰에 캠핑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아 남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날씨는 서늘했고 가을은 깊어갔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라디오를 틀었다. 요즘 나는 KBS kong 앱에서 한국 라디오를 즐겨 듣고 있다. 예전에 자매가 추천해 주었었다. 자신이 자주 듣는 라디오라면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이 미국 라디오보다 한국인인 나의 감성에 확실히 더 잘 맞는 것 같다. 심지어 클래식도 한국 라디오 채널에서 나오는 음악이 더 좋고 귀에 익숙하다. 우리는 가끔 문자로,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둘이 나이가 비슷한지라 8, 90년대 추억의 음악을 선호하니 할 얘기가 더 많아진다.

치료를 위해 병원에서 대기하는 동안 또는 병실에 입원해 있는 동안, 자매는 라디오를 들으며 길고 지루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안다. 비록 다른 공간에 있지만 나도 같은 라디오를 들으면서 조금이라도, 그리고 이렇게라도, 함께해 주고 싶단 생각뿐이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School Picture Day  (0) 2020.11.08
핼로윈  (0) 2020.11.01
아이들 정기 검진  (0) 2020.10.28
농장  (0) 2020.10.26
적응 중...  (0) 2020.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