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한지 두 달이 다 되었다. 시간 참 빠르다.
그동안 특별히 한 일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이리 하루하루가 바쁘게 흘러가는지.
방학이 시작되자 딸아이를 데리고 피부과에 갔다.
딸아이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여드름이 심하게 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은 50대 50의 확률로 여드름이 나게 되어있어서 남편과 내기하듯 지켜보던 중이었다. 그런데 기어이 여드름이 활화산 폭발하듯 분출하고 만 것이다. 저 뽀얗고 티 없이 맑았던 피부가 울긋불긋 여드름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니 무척이나 속상했다. 주변에서는 여드름 약을 먹으면 금세 피부가 깨끗해질 거라고 위로해 주었다. 나는 기분이 안 좋을 때면 남편 뒤통수를 노려보는 일이 잦아졌다.
내 표정이 심각해진 것을 눈치챈 남편이 마지못해 피부과를 예약하였다. 의사를 만나기 위해 거의 세 달을 기다렸다. 의사는 딸아이의 피부를 꼼꼼히 관찰한 후, 먹는 약 대신 바르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효과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고 하였다. 그리고 3개월 후에 피부 변화를 다시 살펴보겠다고 하였다. 지금 두 달 정도 지났는데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약간은 진정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제발 큰 흉터 없이 무사히 이 시기를 넘겼으면 좋겠다.
피부과 처방을 받자마자 딸아이는 써머 캠프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번이 고등학교 마지막 여름 방학인데 뭐 하고 싶냐고 물으니 돈을 벌어 보고 싶다고 하였다. 보아하니 친구들도 이미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쌓고 있는 중이었다. 딸아이는 십 대 청소년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 이곳저곳을 서치하며 알아보았다. 지원서를 작성하고 학교 선생님들한테 추천서를 부탁했다. 여러 곳에서 온라인으로 인터뷰도 보았다. 그리고 합격 통지를 받은 곳들의 조건들을 비교 종합해 보고 최종 선택지를 정하였다. 중간에 의문점이 생기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직접 연락해서 해결해 나갔다. 계약서의 용어들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고 마지막으로 최종 서명을 했다. 이 모든 것들을 혼자 해 나갔는데(물론 필요한 경우 아빠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과정이 아이에게 귀중한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
써머 캠프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이다. 딸아이는 성격상 어린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이 일을 선택한다고 했을 때 의아했었다. 아마도 태권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경험 때문에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기합이 들어가 있는 태권도장과 자율적인 써머 캠프는 전혀 다른 분위기인 것을.
매일매일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그래도 아이는 책임감을 가지고 해나가고 있다. 그 와중에 나는 아이가 배우고 성장해 나가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초반에는 감기몸살로 이틀 정도 출근을 못하였는데 말은 안하지만 아픈 와중에도 무척 속상해하였다. 그 외에는 큰 문제없이 잘 지내는 중이다. 기특하게도 아이는 자신의 샌드위치 도시락을 직접 준비하고 있다. 이것만 해도 나는 얼마나 편하던지.
딸아이는 인내력과 참을성을 배우게 된 것, 직장에서 어른 동료들과 동등하게 대접받는 것 등등에 대해 스스로 대견해하며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동생에게는 '무자비한' 택스에 대해서 설명해주기도 하고 말이다. 어른들 세상을 맛본다는 것이 딸아이에게는 흥분된 경험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집안에서도 어른들의 화법이나 매너를 시전하고 있어 나를 좀 당황스럽게 만든다. 이렇게 딸아이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아들아이의 경우는, 지난달에 보이스카웃 캠프를 다녀왔다.
7일간의 캠프인데 아이가 이렇게 오랜 기간 가족과 떨어져 지내본 것은 처음이었다.
장소는 로드 아일랜드에 있는 Yagoog camp장이었다. 보이스카웃 대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부모와 함께 다 같이 출발한다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는데, 하필 그날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운행을 자제하고 집에 머무르라는 재난 경보가 뜰 정도였다. 시간을 늦춰서 어찌어찌 남편이 운전하여 출발하였는데 그때의 운전길을 생각하면 지금도 어찌 갔었는지 아찔하다. 아들아이는 왜 보이스카웃 캠프는 늘 폭우가 내리냐고 투덜거렸다(그러게... 아들의 모든 캠프가 폭우를 동반하네). 어쨌든 아들을 캠프장에 내려놓고 걱정은 바리바리 싸들고 돌아왔는데... 아이가 눈앞에 안 보이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그 정도 컸으면 이젠 알아서 잘하겠지 싶었다.
일주일 후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날, 나는 엄청난 실수를 하고 말았다. 여러 이메일들이 뒤섞이는 바람에 혼동을 하여 아이를 데려오는 시간을 오전이 아닌 오후 시간으로 착각하고 만 것이었다. 엄마 어디에 있냐는 아이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결국 현장에 있는 다른 보이스카웃 대원 부모에게 아이를 대신 데려와달라고 부탁하였다. 나이 탓인지 실수가 잦아지고 있는 요즘인데, 아주 제대로 방점을 찍었다고 밖에.
일주일 만에 만난 아이는 일주일 동안 단 한 번만 샤워한 것 치고는 아주 꾀죄죄하지도 않았고, 캠프 음식이 별로였다는 것치고는 그렇게 초췌하지도 않았다. 단지 몸이 피곤할 뿐이었고, 안락하고 편안한 집이 그저 좋았다.
캠프 기간 동안 아이는 또래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단다. 가장 우려했던 수영 테스트를 어떻게 운으로 통과하게 되었는지(아무래도 담당자의 실수가 역력한!), 5개의 Merit Badge를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했는지, 어쩌다 손가락에 상처가 났는지, 게임과 캠프 파이어가 얼마나 신났는지, 날이 갈수록 더럽고 쉰내 나는 사내아이들의 야영지를 어떻게 적응해 나가게 되었는지를 쉼 없이 떠들어댔다. 배운 것도, 느낀 것도 많은 캠프였으리라 생각된다.
이번이 첫여름 캠프였기 때문에 아이도 나도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이 여기저기서 드러났지만, 다음번에는 미리 준비하여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본다.
(여담이지만, 얼마 전 한국에서 열린 세계 잼버리 파행을 보면서 마음이 참 착잡했다.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는데, 아이에게 이것을 어떻게 잘 설명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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