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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부활절, 그리고 생일파티


2023년 부활절은 예년에 비해 빨리 찾아왔다. 다행히도 올해의 모든 부활절 행사는 팬데믹 이전처럼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 아들아이는 부활절 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복사를 맡아서 십자가를 들었다.

부활절 당일, 우리 성당의 자랑인 성가대는 그동안 못했던 한을 풀어내듯 작정하고 칼을 갈아 너무나도 아름답고 은혜로운 찬송가를 들려주었다. 미사가 끝난 후 성당 앞마당에서 주일학교의 행사인 에그헌팅을 하였는데, 모처럼 아이들이 햇빛 아래에서 뛰어다니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내 기분도 좋았다. 주일학교 교사로서 오랜만에 부활절 행사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흥분을 느꼈다. 이 자체가 나에겐 큰 은총이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날 복사를 선 아들내미

 
 
늘 그래왔듯이, 우리 집 아이들만의 에그 헌팅도 따로 준비하였다. 에그 안에는 초콜릿과 약간의 돈을 넣었다. 십대인 우리 아이들은 이제 돈이 더 좋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둘이 싸우지 않도록 찾아야 할 에그 개수를 사이즈별로 똑같이 정해주었는데, 외출했다가 돌아오니 아들아이가 울상을 지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40분 넘게 마지막 남은 에그 하나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집이 그렇게 크고 복잡하지도 않거늘. 나의 힌트를 들은 아들아이는 결국 마지막 에그를 찾고 나서야 헤헤 거리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마지막 남은 에그를 못 찾아서 내가 찾아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 녀석.



 

부활절 에그헌팅 준비

 
 
 
4월이면 여기저기서 꽃이 피어나는데, 올해 우리 집 앞마당의 수선화가 유난히 복스럽고 튼실하게 피어나서 기분이 좋았다. 올해는 허리가 안 좋아서 정원 관리를 최소한으로만 하려고 하는데, 몸관리를 잘해서 내년에는 수선화와 다른 예쁜이들을 더 사다 심어야지.
 

 

너무 예쁜 수선화. 하지만 히야신스는 동물들이 많이 먹어버렸다.

 
 

딸아이는 얼마 전에 17살이 되었다. 아이는 생일을 앞둔 몇 주 전부터 친구들을 불러서 집에서 슬립오버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얼마 남지 않은 학창 시절인데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기에 좋겠다 싶었다. 사실 한 번씩은 다해주는 번듯한 생일파티를 우리 아이들에게는 못해줘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기도 했었다.

이제는 다 컸다고 친구들끼리 일정을 맞추고 부모들한테도 각자 허락을 구하고 알아서들 잘하니 나는 그저 음식 준비만 잘하면 되었다. 딸아이에게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어본 후 메뉴를 정하였다. 최대한 깔끔하게.

후라이드 치킨과 한국식 양념 치킨
마르가리타 피자
날치알 유부초밥
카프리제 샐러드
훈제 연어 및 햄치즈 카나페
뚜레쥬르 초코 케이크
한국 과자
아이스크림

메뉴를 정하고 장을 볼 동선을 정하니 코스코, 월마트, 한국마트, 트레이더 죠, 뚜레쥬르 베이커리… 이건 뭐, 일주일 내내 장을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저질체력인지라 살짝 겁이 났지만… 그래도 해내었다!

당일 아침, 파티용품을 판매하는 Party City에 가서 헬륨 풍선들을 잔뜩 사와 아이들이 머무를 지하 게스트룸을 장식하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내미가 카프리제 샐러드와 카나페 만드는 것을 도와주니 생각보다 쉽게 음식 준비도 끝마쳤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딸아이가 슬립오버를 위해 초대한 세명의 친구들이 도착하였다.
 


 

한참 파티룸 꾸미는 중

 

엄마표 치킨

 
 

내가 만든 한국식 양념 치킨은 그야말로 인기 만점이었다. 특별한 레시피가 아님에도(그래서 나에게는 5% 모자란 맛) 매콤 달콤 양념 치킨은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뚜레쥬르 초코 케이크는(하아~ 여기서는 비싸도 너무 비싼 ㅜㅜ) 이쁘다며 아이들이 사진을 찍어댔다. 한 친구는 양념 치킨과 케이크가 맛있다며 집에 돌아갈 때 따로 그릇에 챙겨갈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뭐 성공한 메뉴라고 볼 수 있겠다.

딸아이는 음식을 같이 만들 때부터 기분이 좋아서 ‘엄마 맛난 음식 해줘서 고마워요~’라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우리 이쁜 딸을 위해서 이 정도는 해줘야지~’라고 말해 주면서 내 마음속에는 뿌듯함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왜냐고? 딸아, 이 엄마는 그냥 편하게 나가 사 먹는 게 좋단다.

한 친구는 밤늦게 돌아갔고, 남은 아이들은 밤새 게임하고 재잘재잘 키득거리며 여자아이들만의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늦게 일어난 아이들에게 그 전날 유쾌 상쾌 발랄하던 모습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친구 엄마라고 내 앞에서 놀라울 정도로 수줍고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애착 인형을 꼭 끌어안고(심지어 우리 딸 애착 인형보다 컸다!) 묻는 말에 긴장하며 대답하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했다

아들내미 골프 레슨 때문에 아이들에게 간단한(하지만 나름 신경 쓴!) 식사만 차려주고 먼저 작별 인사를 한 후 집을 나섰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다들 집에 잘 돌아갔다고 했다.

딸아~ 엄마는 최선을 다한 거다! 신나고 즐거웠던 거 맞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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