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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평범한 설날



새해가 되면 성당에서 한국 달력을 배부받는다. 그 달력을 보면서 일 년을 쭈욱 훑어보는 게 한 해의 시작이다. 이때 구정과 추석이 언제쯤인지, 양가 부모님들의 음력 생신이 언제쯤인지 미리미리 체크를 하곤 한다. 그런데 올해의 설날은 너무 갑자기 찾아온 느낌이다.

매년 그렇듯이 정말 의미 있는 구정을 챙기고 싶지만 늘 그렇듯이 올해도 평범하게 보냈다. 나의 항변은 '여긴 휴일도 아니고 애들은 평소와 똑같이 학교 가는데 따로 구정 챙기기 어렵다'였는데, 올해는 구정이 주말이었는데도 결국 변한 건 없었다. 게으른 자의 변명이었음을 인정해야겠다.

토요일에는 아들아이가 친구를 초대하여 우리 집에서 플레이데이트를 하였다. 이 친구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7학년이 되면서 새로 사귀게 된 아이인데 이름은 Andrey이다. 참고로 부모의 이름이 아나스타샤와 드미트리인데, 처음 이 이름을 들었을 때 러시아 고전 문학에서나 보던 너무나 클래식한 이름이라서 괜스레 설렜더랬다. 어쨌든 이 두 녀석들의 조화가 좀 웃긴데, 우리 아들은 또래 학년 중 덩치가 가장 작은 반면 Andrey는 학교에서 가장 큰 아이이다. 게다가 생긴 것도 우리 아들은 여전히 뽀송뽀송 생글생글 아기아기한데 Andrey는 코 밑에 거뭇거뭇 수염이 난, 누가 봐도 고등학생의 심각심각 포스를 풍기고 있다. 둘이 어떻게 친하게 되었는지 물어보니 아들아이왈, 자기처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한단다. 아하, 뭔가 그림이 그려지는구나.

나는 아이들을 위해 점심으로 우동과 유부초밥을 준비하였다. Andrey는 젓가락질을 할 줄 아는 아이인지라 먹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유부초밥은 처음인지 신기해하며 재료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나는 간식도 틈틈이 챙겨주었다. 

아이들이 방에서 노는 동안 딸아이는 황당+당황 그 자체인 표정으로 나에게 와서 말하였다.

- 엄마! Andrey 쟤... 정말 중학생 맞아?
- 응, 13살 맞아. 엄마도 확인했어. 그런데 네 고등학교 친구들과 비슷한 느낌이지? (웃음)

아이는 낄낄대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그런데 엄마! 내가 방에 있을 때 둘이 대화하는 거 들었는데…
- 응 그런데?
- Andrey가 OO한테 '너네 누나 몇 살이야?'하고 물어봤거든? 그런데 OO가 ‘몰라’ 그랬어.
- 정말?
- 응. 그러고 나서 10초 있다가 "16살" 그랬어. 내 나이를 생각해 내는데 10초나 걸렸어.

딸아이는 동생이 얼마 만에 대답하는지 속으로 시간을 재고 있었나 보다.

- 이야~~ 너네 찐 남매 맞구나!

우리는 여러 가지로 어이없는 이 상황에 대해서 그저 바보같이 웃어댔다.

 

Andrey는 집에 갈 때  작고 수줍은 목소리로 “음식 맛있었어요. “라고 말하였다. 덩치가 커서 그렇지 은근히 귀여운 친구였다.


드디어 설날 아침이 밝았다.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집에 와서 점심으로 떡국을 끓여 먹었다. 그리고 저녁으로 춘천 닭갈비를 먹었다. 아, 내가 직접 만든 건 아니고 요즘 이곳에서 핫한 배달 서비스를 이용해 본 것이었다. 무려 뉴저지에서 배달 오는데, 주변에서 칭찬 일색이라 호기심에 나도 한번 주문해 봤다. 오~ 닭갈비도 그렇고 오색영양떡, 서비스로 받은 전과 겉절이 모두 훌륭했다. 앞으로 자주 이용할 것 같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에게 세배를 하였다. 아빠가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주니 좋다며 신나라 하였다. 덕담이 제대로 귀에 들어왔을지는 모르겠다.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자,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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