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ton Ballet Nutcracker 2021

지난 여름 30년 지기 내 친구가 이곳 보스턴에 딸아이와 함께 왔었다. 딸아이를 보스턴 발레단과 연계된 예술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서였다. 각종 콩쿠르에서 큰 상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내던 친구의 십 대 딸아이는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했고, 아이의 장래를 위해 친구 부부는 큰 결심을 하였던 것이다.

아이를 기숙학교에 들여보내고 마음이 복잡해져 있던 친구를 위로해 주었던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한국으로 간 지 얼마 안 되어 이 친구가 흥분된 목소리로 연락을 해왔다.

- 기뻐해 줘! 우리 OO가 이번에 오디션을 봤는데 겨울에 하는 보스턴 발레 nutcracker 공연에서 클라라 역을 맡았어!

나는 환호를 지르며 기뻐하였다. 여태까지 보스턴 발레 단원들이 맡아왔던 클라라 역을 아직 고등학생인 아이가 오디션을 통해 실력으로 붙은 것이었다. 이것은 나중에 이곳 지역 한인 신문에도 언급될 정도로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친구는 딸아이의 공연을 보기 위해 비행기 표를 예약하여 이번 연말, 다시 보스턴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고맙게도 우리 가족을 12월 23일 저녁 공연에 초대해 주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스턴 다운타운을 거닐었다.
호텔에 묵고 있는 이 친구를 만나
공연 전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하였는데,
그전에 보스턴 커먼과 오페라 하우스 근처를
한 바퀴 쭉 돌아보았다.
펜대믹으로 인해 예전과 같은
활기찬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로서는 오랜만에
시내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오페라 하우스 정문

화려한 오페라 하우스 내부

보스턴 발레 nutcracker의 인기 마스코트인 베어.
2021년 우리 집 크리스마스트리의
오너먼트가 되었다.
매년 다른 포즈의 베어가 판매되는데
올해의 포즈는 위 사진과 같다.
하여, 우리는 쩍벌 곰이라고 명명하였다.
참고로 이날 공연에서는 유망한 한국인 발레리노가
곰 캐릭터를 맡았었다.

친구가 무대에서 엄청 가까운(그래서 '엄청 비싼'.. 사랑한다 친구야!) 좌석을 예약해 두었다.
덕분에 무용수들의 표정 하나하나까지 모두 잘 보였다.
친구가 딸아이에게 들었다는 무대 뒷얘기와 각 무용수들의 특징들을 나에게도 설명해 주었는데
그래서인지 예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이 공연을 봤을 때보다 이번 공연이 훨씬 더 친숙하면서
흥미진진하게 느껴졌다.

공연이 끝난 후 무대 인사를 하는 클라라.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친구의 딸아이를 보면서, 이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었던 때부터 한 살이 되었을 때 우리 신혼집에 와서 지 엄마의 무릎 위에 앉아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던 모습, 그렇게 한해 한해 커가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북받치는 감정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이런데 그 엄마의 기분은 어떨까? 나는 내 옆에 앉아 있는 친구의 등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딸 잘 키웠네~ 대견하다 친구야.

작년에는 팬데믹으로 인하여 온라인 공연을 하였는데, 2년 만에 여는 대면 공연이라 그런지 관객들의 호응이 유독 컸던 것 같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무대 위의 무용수들은 벅찬 감격으로 환하게 웃어보였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우리 아들, 내 친구,
우리 딸, 친구 딸.
우리 애들은 무슨 연예인이라도 보는 것처럼
신기해 하였다.

공연이 끝난 후 우리는 오페라 하우스 뒷골목으로 갔고, 건물 뒷문을 통해 퇴근하는 무용수와 연주자들 사이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던 클라라를 만났다(이런 것도 관계자가 아니면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연말에 우리 집에서 다시 모이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보스턴 발레 nutcracker 공연은 한 달간의 여정을 끝으로 26일 무사히 막을 내렸다. 최근에는 코로나 환자수가 급증하면서 많은 공연들이 취소가 되었다고 들었다. 감사하게도 우린 좋은 공연을 보며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 설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순간이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