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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21 할로윈

아이들에게 최고의 이벤트인 핼러윈이 왔다.

작년에는 팬데믹으로 모두들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Trick or treat을 위한 사탕과 초콜릿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기에, 우리 집 앞은 그냥 지나가라는 의미로 집 앞의 전깃불을 모두 꺼놓았었다. 보아하니 우리 이웃집들도 약속이나 한 듯 많이들 그렇게 하였다. 창 밖으로는 간혹 몇몇 가족들이 핼러윈 바구니를 들고 불 꺼진 어두운 동네를 돌아다니긴 하였다.

올해는 조금 분위기가 바뀌었다. 여전히 서로 조심하자는 분위기는 있었지만, 아이들 학교에서는 핼러윈 코스튬을 장려하는 분위기였고 나 역시 몇 주 전부터 사탕과 초콜릿을 잔뜩 준비해 놓고 있었다.

딸아이는 올해 동양 귀신을 해보겠다고 하였다( 아하... 그래서 여름부터 머리를 길렀던 거였군. 넌 다 계획이 있었구나). 그러더니 영화 '링'에 나오는 '사다코'로 계획이 좀 더 구체화되었다. 할리우드에도 오래전에 리메이크된 영화이긴 하지만 이곳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알아볼까 싶었다. 뭐 어차피 틴에이져들의 분장은 대부분 알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어른들의 중론이다.

딸아이와 나는 열심히 온라인 사이트를 뒤져 하얀 소복... 스런 옷을 찾아보았다. 나는 가급적 심플하고 뭔가 '한'이 서려있어야 할 듯한 그런 옷들을 어렵게 찾아 아이에게 보여주었는데 그때마다 아이는 마음에 안 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그러다가 딸아이가 마음에 드는 옷이 있다며 폰 화면을 내밀었는데, 나는 순간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하늘하늘한 소재에 팔랑거리는 반팔과 겹겹의 레이어로 이루어진 치마... 파티룩으로 어울릴만한 너무 예쁜 롱드레스였다. 외모 꾸미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지라 늘 헝클어진 머리에 편한 운동복 스타일의 옷만 입고 다니는 아이인데, 이런 식으로 소녀소녀한 취향이 드러나기도 하나 보다. 물론 본인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딸아이는 자신의 용돈을 내밀었고 나는 흔쾌히 나머지 돈을 보태어 결제해 주었다.

금요일, 딸아이는 드레스를 입고 학교에 갔다. 이후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엔젤 아니냐고 하였단다. 사실 엄마인 내 눈에는 너무 이쁜 딸인지라 친구들의 반응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 딸아이는 친구들 앞에서 긴 머리를 앞으로 넘겨 얼굴을 가려보았단다. 그제야 친구들은 "ghost!"라고 외쳤다고 한다.

작년에 아마존에서 한국의 달고나 키트를 아주 저렴한 가격에 판 적이 있어서 재미있겠다 싶어서 사놓고서는 차일피일 미루다 잊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얼마 전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이곳 미국에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도대체 아이들이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일부는 전편을 본 것 같고 또 다른 일부는 유튜브로 편집된 것을 보았을 테고 나머지는 친구들에게서 들었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여하튼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드라마 속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한다.

핼러윈 당일 딸아이는 친구 집에서 핼러윈 파티를 하기로 하였다. 아이는 나에게 친구들에게 나눠줄 달고나를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나 역시 재미있겠다 싶어서 호기롭게 시도해보았는데, 생각보다 모양을 만들어내기 어려웠다. 일단 누르미에 들러붙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유튜브를 찾아보면서 여러 방법을 강구해 보았지만, 정말 정말 만들기 어려웠다.

아홉 개의 달고나를 만들기 위해서
서른 번은 국자를 휘저었지 싶다.
나중에는 설탕 냄새에도 속이 다 느글거렸다.
더 만들고 싶었지만 결국 아홉 개에서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모양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나하나 유산지로 싸서 개별 포장하였다.
자, 이제 나도 이 게임의 설계자가 되는 것인가?



딸아이는 친구 집에서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물론 아빠가 차로 가서 데리고 왔다. 아빠와 엄마의 재촉 메시지가 없었으면 아마도 더 놀았을 수도 있었겠다. 물어보니 같이 수다 떨고 피자 먹고 영화 보며 놀았단다. 물론 Trick or treating도 하고 말이다. 틴에이져들끼리 무슨 영화를 보았을까 궁금하여 물어보았더니, '쿵후 팬더'와 디즈니 만화 영화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보았단다. 틴에이져 영화나 마블 영화, 아니면 몰래 어른들 영화를 봤을 수도 있었을 텐데 쿵후 팬더와 잠자는 숲 속의 공주라니, 이건 더 놀랍다. 거짓말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뭐 어쨌든, 아이는 좋은 시간을 보낸 듯싶었다.
그나저나 달고나 게임의 결과는?
한 친구가 별 모양을 성공하였단다. 딸아이는 자신이 성공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다소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초보 엄마가 만든 달고나가 질적으로 일관되지 못하니... 뭐 어차피 복불복 게임일 뿐.

아들 녀석은, 예전에는 동네 친구들과 거의 길 끝에 위치한 우리 집에서 출발하여 한 바퀴 돌며 trick or treat을 하곤 하였다. 그러나 올해는 그런 거 없이 마스크 끼고 집에 오는 아이들에게 사탕과 초콜릿을 나눠주라고 하였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백신을 아직 안 맞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나의 본심은... 사실 귀찮아서였다. 핼러윈이 일요일인데, 다음날 일찍 일어나야 하는 데다 친구들 간식을 미리 준비해 놓는 것도 귀찮고, 두 시간 가까이 trick or treat 하는 아이들을 뒤따라 다니는 것도 귀찮아서였다. 이럴 때는 백신 안 맞은 것이 어찌나 고맙던지. 다행히도 아이는 크게 개의치 않아하는 것 같았다.


코스코에서 산 핼러윈 초콜릿 모음.
남는 건 당 떨어질 때 내가 먹어야 하기 때문에
내 취향대로 골랐다.

현관에서 기다리는 동안 유튜브 보라고 했더니
신나라 하는 아들.
이것도 나름 괜찮지 아들아?


아들내미는 딸내미처럼 핼러윈 때 무엇을 입을지 고민해 보거나 특별한 아이디어를 내지도 않는다. 그래도 누나가 예전에 입던 코스튬을 물려주면 헤벌쭉 좋다며 입곤 하였다. 이번엔 누나가 3년 전에 입었던 포켓몬 캐릭터, Umbreon(한국에서는 블래키) 옷을 물려받았다. 그래, 앞으로 2년은 계속 블래키로 가자꾸나.

6시부터 집 앞의 불을 환하게 켜고 기다리고 있으니 한 팀, 두 팀... 초인종을 누르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은 어린 꼬맹이들이었고 귀여운 복장을 한 채 큰 소리로 "Trick or Treat!"하고 외쳐댔다. 작년은 그냥 넘어갔을 테고 아마도 올해가 제대로 된 핼로윈 행사이지 싶은데, 이 어린아이들의 눈빛은 반짝반짝거리고 있었고 집을 떠나기 전 꽤나 연습한 듯 목소리는 질서 있고 우렁찼다. 좀 더 큰 아이들은 몇 번 해봤다고 아무래도 설렁설렁하는데 말이다. 아들 녀석도 귀엽다고 느꼈는지 키득거리며 정성스럽게 초콜릿을 나눠주었다.

이렇게 해서 올해의 핼로윈은 마무리되었다.
자, 이제 11월이니 땡스기빙은 또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을 해봐야겠다. 그래 봤자 늘 예년과 같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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