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쁘다 하면서 살아왔지만 이번 6월처럼 바쁜 달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큰 아이의 학교 일정이 5월이면 거의 마무리되는 시기라, 그 이후에는 여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기대와는 너무 달라서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게다가 둘째 아이 관련 행사들은 또 어떻고.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프롬이라고 불리는 졸업 파티를 성대하게 치른다. 이때 여학생은 화려한
드레스와 화장을 하고, 남학생은 턱시도를 입는다. 전통적으로는 남학생이 미리 여학생에게 파트너를 신청하고 여학생이 이를 수락하면, 프롬 당일날 리무진이나 부모 차를 몰고 와 그 여학생을 태우고 파티 장소로 가서 다 같이 다과를 즐기고 춤도 추는 시간을 보낸다. 참고로 미국에서 나고 자란 내 사촌 동생은 프롬 파티에서 프롬킹(prom king)에, 파트너는 프롬퀸(prom queen)에 뽑혔다고 들었다. 보수적인 백인 아이들이 대부분인 학교를 다녔는데 리더십 있고 인기가 좋았었단다. 역시 어딜 가나 성격이 좋아야.
우리 딸아이는 워낙에 유교걸인지라, 드레스 선정에서부터 고민이 많았다. 어깨 드러나는 싫고, 가슴 부각되는 거 더더욱 싫고, 화려한 색깔 들어가는 거 마음에 안 들고. 그런데 팔고 있는 모든 프롬 드레스들이 다 그런 걸..? 이런저런 숙고 끝에, 딸아이는 어르신이 봐도 점잖고 얌전한 검은 드레스를 골랐다. 어찌 됐든 키가 커서 그런지 바닥을 쓸고 다니는 길고 풍성한 드레스가 꽤 어울렸다. 내가 낳았지만 키 하나는 정말 부럽다.
다음은 파트너 수락.
딸아이에게는 4년 전부터 학교 파티 때마다 데이트를 신청해 온 남자아이가 있다. 하지만 딸아이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해 왔다. 매번 거절당하던 그 남자아이는 이번에도 데이트 신청을 했다. 또 거절당할까 약간은 소심하게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웬일로 딸아이가 수락을 했단다. 역시 나무는 열한 번을 찍어봐야…
- 엄마가 그랬잖아.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라고. 그리고 우린 절대 심각한 사이 아니야. 그냥 친구야 친구. 남자 사람 친구!
말하면서도 얼굴이 시뻘게진 딸아이. 누가 뭐랬나. 늘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었고, 이런저런 이성과 만나면서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었다. 그럼에도 딸아이는 친구들에 비해 이성 관계에 대해서 아직은 많이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프롬 파티는 아이들에게 신나는 행사이지만, 부모들의 근심거리이기도 하다. 워낙 사건 사고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에는(우리 아이 학교도) 아예 리무진 버스를 대절하여 학교에 모인 아이들을 태우고 행사장으로 이동하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부모에 의한 합법적 통제 시스템인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찬성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아이들은 성인들처럼 멋~지게 차려입고, 학교에서 미리 음주 측정을 받은 다음, 리무진 버스에 줄줄이 올라타서 프롬 파티장으로 향했다.
행사 장소는 보통 호텔 연회장이지만 올해는 골프장 클럽하우스였다. 딸아이 말에 의하면 장소도 멋졌고 음악과 음식도 좋았으며 친구들과의 시간도 엄청 즐거웠단다. 상기돼서 밤늦게 들어온 딸아이의 행복한 표정을 보니 나 역시 마음이 흐뭇했다.
프롬 파티는 고등학교 졸업을 축하해 주고 너는 이제 사회에서 자유와 책임이 따르는 어른이야!라고 공식 선포하는 자리인 듯싶다. 서양 영화에서 보는 성인 데뷔 무대 같은.


졸업식이 있기 전, Evening of Recognition이라 하여 여러 분야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둔 학생들에게 상과 장학금을 수여하는 행사가 따로 있었다. 우리 딸내미는 라틴어 과목에서 우수 학생으로 선정되었고, The seal of biliteracy(해당 언어에서 유창함을 인정해 주는 일종의 자격증?)를 받았다.
이 날은 아들내미의 중학교 마지막 음악 콘서트도 있었기에 두 학교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바쁜 날이었다. 이제 내년부터는 당분간 이렇게 하루 두 탕을 뛰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망의 딸아이 졸업식!!

날씨는 엄청 화창한데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행사를 기다리는 동안 좀 힘들었다. 그런데 본식을 위해 졸업생들이 입장하는 순간 구름이 햇빛을 가려주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작년에 새로 부임한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핸드폰 사용을 자제하고 점잖게 있어달라고 당부하였다. 그러고 나서 정작 본인은 새 학교에서의 첫 졸업식이라며 아이들을 배경으로 아이돌처럼 셀카를 찍어 웃음을 유발하였다. 또 졸업생 대표로 나선 학생 회장은 미국식 농담이 가득한 졸업 연설로 사람들을 배꼽 잡게 만들었다. 웃음과 환호가 연달아 터져 나오는 졸업식. 역시 미국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장 선생님이 공식적으로 졸업을 선언하는 순간, 아이들은 환호와 함께 머리에 썼던 졸업모를 공중으로 던졌다. 이 순간을 위해 4년을 고생했구나 싶을 정도로 보는 내가 다 뿌듯하였다.
그리고 수백 명의 아이들은 일일이 호명되어 단상에 올라가 졸업장을 받고 교장 및 학교 관계자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확실히 미국 고등학교의 졸업식은 한국 졸업식에 비해 성대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한국이야 워낙 대학 진학률이 높으니 또 다르지만, 미국에선 고등학교가 정말 마지막 졸업식일 가능성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동네가 교육열이 나름 높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졸업장과 목에 두른 띠 색깔은 딸아이가 National Honor Society, World Language National Honor Society 회원이었으며, Magna Cum Laude(우등상), The seal of Biliteracy(라틴어 자격증)를 받았음을 보여준다. 우리 딸아이는 해당되지 않지만, 스포츠팀 주장을 표시하는 목 띠는 두 색깔로 꼬여있어 눈에도 확 띄고 간지 나던데, 이런 것만 봐도 역시 미국에선 스포츠를 특별하게 여기는구나 싶었다.

딸아이는 이제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다. 아이에겐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얘기해 주고 있는데, 과연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딸도 나도 기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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