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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견진 성사

6월 4일, 딸아이가 성당에서 견진 성사를 받았다.

세례 성사가 출생을 의미한다면 견진 성사는 성장과 성숙을 의미한다. 즉 견진 성사를 받음으로서 신앙적으로 더욱 견고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로서 상당히 중요한 성사인데, 이를 위해 아이는 지난 1년 동안 주일학교 견진반에서 집중적인 교육을 받으며 준비해왔다.

사실 나는 몇 년 전부터 그러니까 아이의 본격적인 사춘기가 시작되면서부터, 우리 아이가 견진 성사를 제대로 받을 수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나름 모범생이고 집에서는 흔한 사춘기 아이였지만, 주일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아이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은근하게 삐딱선을 타며 반항하는 아이. 물론… 엄마인 나는 아이가 그렇게 성당에 가기 싫어하는 이유를 100가지도 댈 수 있다.

조만간 부모의 품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세상살이를 하게 될 아이에게 건강한 신앙생활은 꼭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되었지만, 아이의 거부감이 너무 크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지금이 때가 아니라면 다음 언젠가로 미룰 수도 있는 것이었다(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나에게는 엄마로서 마무리해줘야 할 숙제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 불안 불안한 예상과는 달리 아이는 주일학교를 끝까지 마치고 견진까지 받겠다고 하였다! 이때 우리 아이를 위하여 매일같이 기도해주시는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감사함과 동시에 안도감을 느꼈다. 아이는 평소 학교에서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를 믿는 집안에서 자란 친구들과 서로의 문화와 신앙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눈다고 하였다. 그 안에는 긍정적인 이야기도 있었을 것이고 부정적인 이야기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자신의 신앙과 세상에 대한 고민을 해왔던 것 같다. 나는 이러한 경험들이 아이의 내적 성장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견진 준비를 하면서 아이는 자신의 견진명을 새로 갖고 싶어 하였다. 한국에서는 세례와 견진 구분 없이 세례명을 계속 사용하는데 비해, 미국에서는 본인이 원하면 견진명을 따로 정할 수 있단다. 아이의 원래 세례명은 가브리엘라이다. 대천사 가브리엘의 여성형 이름이다. 그런데 전부터 자신의 세례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왜 굳이 남녀를 구분하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견진명을 가브리엘로 하겠다고 하였다. 가브리엘라와 가브리엘을 다 같이 쓰겠다? 내가 알기로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미국에서는 워낙 성 정체성 관련 이슈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보니 처음에 신부님은 딸아이에게 말 못 할 고민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까지 하셨다. 딸아이는 왜 가브리엘이라는 견진명을 선택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자신의 논리와 생각을 에세이로 써서 신부님께 제출하였다. 신부님, 주일학교 선생님과 상의하여 오랜 숙고 끝에 결국 아이의 뜻대로 하기로 하였다.

견진 성사를 받기 전 나름 고민하고 자발적으로 알아보는 등의 노력이 대견했다(실제로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고 말이다). 평소에 부당하다고 느껴 불만스러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오랜 전통이라 일단 따르기는 하겠다는 이 엄마와는 달리, 자신의 신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 노력하는 아이를 보며 확실히 나와는 세대가 다르구나 싶기도 했다.

이후의 시간들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수업 한번 빠지는 일이 없었고 견진을 받기 전에 필요한 숙제와 봉사활동들도 알아서 채워 나갔으며 피정도 잘 받았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성당 자매님이 우리 아이를 위해 흔쾌히 견진 대모님이 되어주시기로 하였고 견진 날 입을 의상, 예쁜 꽃다발 등등 이 날을 위한 준비는 착착 잘 진행되는 듯 보였다.

리허설 중



이번에 우리 성당에서는 8명의 학생들, 15명의 성인이 견진성사를 받게 되었다. Reed 주교님이 이를 위해 우리 성당을 방문해 주셨다. 성사를 받게 될 신자들과 견진 대부모들은 미리 성당에 모여 리허설을 여러 차례 반복해 봄으로써 본식에서 실수가 없도록 만전을 기하였다. 그리고 오후 3시에 견진 성사를 위한 미사가 진행되었다.

본당 신부님께서 견진 받을 신자들을 일일이 호명하는 순서가 되었다. 그런데 당연히 불려야 할 우리 딸아이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우리 아이의 이름만 건너뛰고 다른 분들의 이름이 차례차례 불려졌다. 모두 대답하며 일어섰지만 혼자만 남겨진 채 놀라서 두리번거리는 아이, 당황스러워하는 대모님과 선생님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부모석에 따로 앉아 있던 나로서도 당황, 황당, 혼란 그 자체였다. 손을 들어 아이의 이름이 빠졌다고 외치고자 하였으나 이미 그다음 식순으로 넘어간 후였다.

물론 가장 중요한 예식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아이는 주교님께 그렇게 원하던 이름인 ‘가브리엘’로 불리며 견진 성사를 받았다. 이제 세례를 완성하고 더욱더 성숙한 신앙을 위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미사를 마치고 나는 축하한다고 말하기 위해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엄마, 엄마는 내 이름 들었어? 내 이름이 불렸는데 혹시 내가 놓쳤던 거야?'하고 물어보았다. 아이 말에 의하면 그 당시 패닉에 빠졌었다고 하였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신부님 앞으로 갔다.

- 신부님, 아까 호명하실 때 우리 딸 이름 빼먹으셨어요.

신부님은 몹시나 당황해하시며 미안하다고 아이에게 연신 사과하셨다. 우리가 말씀드리기 전까지 신부님도 깨닫지 못하셨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주일 미사 중에도 공개적으로 신자들 앞에서 사과를 하셨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신부님께 미완성 초고 명단이 전달되었다고 한다. 그 명단을 준비하신 분은 원활한 견진 성사를 위해 여러 날 밤늦게까지 준비를 해오셨는데 막판에 잘못된 명단을 건네셨던 것이고, 신부님은 신부님대로 그 명단을 토대로 호명하신 것이었다. 인간적인 실수가 있었을 뿐이었다. 혹여 가브리엘의 마음이 다치지 않았을까 싶어 신부님, 대모님, 선생님, 자매님들이 집중적으로 기도를 해 주셨고, 그 덕분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의 기분은 괜찮.. 아니 상당히 좋아 보였다. 심지어 어른들의 정중한 사과까지 받았으니 자신이 존중받았다는 느낌도 들었을 것이다. 사건사고없이 너무 평범했던 지라 어린날 받았던 견진 성사 그 순간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 나와는 달리, 딸아이에게는 평생 절대 잊을 수 없는 강력한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주교님과 신부님, 선생님, 견진 받은 학생들(어쩌다보니 공인이신 주교님, 신부님들 얼굴까지 모두 블러 처리 ㅋㅋ)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에는 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한 가지 과제를 해결하고 나면 늘 또 다른 과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가끔은 외롭고 고단하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의지하고 극복하게 만드는 것은 신앙의 힘 덕분이었다.

지금은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감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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