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친한 동생으로부터 레몬 트리를 선물 받았었다. 레몬트리에 여러 개의 레몬이 실하게 달려있으니 잘 키워보라는 전화를 미리 받고 나는 나만의 레몬 트리를 상상하였다. 키가 얼마나 큰 ‘트리’일까, 레몬은 얼마나 ‘샛노랄’까.


그리고 받아본 레몬 트리를 보고는, 애걔?
얘를 레몬 트리라고… 불러도 되나? 레몬 열매는 도대체 어디에 붙어있는 건가? 레몬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조그만 열매들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며 나는 한참을 고민해야만 했다.

일단 레몬 트리는 햇빛이 중요하니 여름 동안은 햇살 좋은 뒷마당 덱에서 키우기로 하였다. 아침마다 열매들, 아니 레몬들 상태를 확인하곤 하였는데 당황스럽게도 이 레몬들은 날마다 하나둘 속절없이 땅에 떨어져 버렸다. 처음에 나는 다람쥐들을 의심하였다. 아하, 이 괘씸한 것들이 따먹어보고 맛없으니까 바닥에 내동댕이 쳐놨구나! 하지만 단 하나 남은 레몬이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커가는 것을 보고서야 다람쥐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되었다. 다람쥐는 죄가 없다. 레몬 트리는 단 하나의 레몬에 집중하기 위해 나머지 나약한 레몬들을 과감하게 포기한 것이었다(이러한 나의 감상을 듣고서, 사회 속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하여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나의 친구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가슴 아파하였다).

단 하나의 이 선택받은 레몬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갔으며, 작고 가냘픈 잎과 뿌리는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이 레몬의 성장에 쏟아부었다.

날씨가 선선해지고 햇볕도 약해지자 나는 분갈이를 한 후 화분을 집안에 들여놓았다. 그동안 햇살을 충분히 받아온 레몬은 기다렸다는 듯이 노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딸아이와 나는 아침마다 경이롭게 바라보곤 하였다.

딸아이는 언제 딸 거냐고 나에게 계속 물어보았다. 나는 첫 레몬을 수확하는 기쁨을 딸아이에게 양보하였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레몬을 따서 나에게 가져왔다. 실하디 실한 레몬을 바라보며 나는 과육의 상태가 궁금하였다. 집안에서 키운 과실은 속이 비어있는 경우가 흔하다고 들었다.
다행히도 나의 레몬은 꽤나 묵직하였다.

레몬을 잘라보았다. 과즙이 흘러넘칠 정도로 싱싱하고 '온전한' 레몬이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난 후에 레몬 트리는 다시 몽글몽글한 꽃몽우리를 만들어 내었다.

꽃은 활짝 피었다. 레몬 꽃 특유의 상큼한 향과 함께 아기자기한 자태를 뽐내면서 말이다.
사실 딸아이는 레몬 나무가 너무 어리다며 아직은 과실을 맺을 때가 아니라고 나에게 여러 번 말하였다. 좀 더 자랄 때까지 좀 더 준비가 될 때까지, 적어도 몇 년은 과실을 맺지 않게 하고 넘어가자고 주장하였었다. 레몬나무를 키우는 전문가들이 듣기에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내 상식으로도 어쩐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솔직히 첫 번째 레몬을 수확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고 말이다. 나는 딸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한동안 우리 집안에 상큼하고 그윽한 향기를 채웠던 이번 레몬 꽃은 후세를 남기지 않고 사그라졌다.
이제 봄이라고 기온이 오르고 햇빛도 부드럽고 풍성해졌다. 겨우내 실내에만 있던 레몬 트리가 비실비실해진 느낌이 들어서 그 좋아하는 햇빛 좀 마음껏 쬐라고 다시 바깥에 내다 놨다. 어디 레몬 트리뿐인가? 우리 가족 역시 따뜻한 봄볕을 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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