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 아침, 친하게 지내는 동네 언니가 우리 집에 잠시 들렀다.
- 오늘 아버님 기일 맞죠?
- 아 네...
- 안아 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네요. 대신 이거라도..
언니는 꽃화분을 나에게 내밀었다.

평소 조그만 일에도 늘 세심하게 배려해 주는 언니가 늘 고마웠는데, 오늘 또 이렇게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 준다.
아빠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돌아가셨다. 아빠의 임종을 알지 못했던 나는 한국행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대기 중이었고, 엘에이에 있는 지인 K와 통화하면서 아빠의 빠른 쾌유를 위해 함께 기도하였다. 같이 기도하자고 먼저 제안했던 K에게 지금도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한국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전화로 나는 아빠의 임종 사실을 알게 되었다. 때마침 택시가 신촌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웃고 떠드는 젊은이들, 거리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크리스마스 캐럴, 그리고 택시 기사가 틀어놓은 라디오 속 목소리들이 너무나 이질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고 난 후, 나는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것이야말로 돌아가신 아빠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어쩔 수 없는 그리움과 슬픔이 몰려오지만, 아빠를 위해 나는 가족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자 하였다. 나는 해외에 나와 있어서 함께 하지 못하지만, 매년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아빠를 기억하기 위해 온 식구가 한자리에 모인다. 아빠가 우리 가족에게 남겨주신 마지막 선물이 아니겠냐고... 그렇게 우리 가족은 아빠를 추억하고 서로를 위로한다.
'아버지 좀 전에 돌아가셨어.'
그리고 이번 크리스마스 아침, 나는 한국의 친한 친구로부터 연락 한통을 받았다. 친구 아버님은 암으로 투병 중이셨었다. 이 친구도 앞으로 매년 이맘때 즈음이면 어떤 감정을 경험하게 될지를 알기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안쓰럽고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이 든다.

우리 집 크리스마스트리 밑에는 한국에서 온 (것으로 되어 있는) 선물들이 가득 쌓여있다. 한국에 나갈 때마다 아이들 용돈으로 쓰라고 여기저기서 받은 돈을, 대부분은 아이들 통장에 넣어주지만 일부는 이렇게 연말에 아이들 선물 사는 데 쓰고 있다. 그리고 선물 포장 위에는 이것은 한국의 누구한테 온 선물이고 저건 누구한테 온 선물이라고 메모를 붙여놓는다. 아이들은 이렇게 한국의 가족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아들내미는 선물 때문에 흥분하여 늘 크리스마스 전날에는 잠을 못 이룬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새벽 2시 반부터 깨어나 있었단다. 아침 일찍부터 온 가족을 흔들어 깨우고는 빨리 선물을 열어보자고 성화이다. 아이들이 흥분하여 선물 포장을 뜯고 종알종알 거리는, 바로 이 모습을 눈으로 지켜보고 가슴으로 기억하고 싶어서 매년 열심히 선물을 사서 모으고 포장하는 수고를 하게 되나 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쿠키를 데코레이션 하고 나는 피칸 파이를 만들었다. 피칸 파이의 경우 저번 땡스기빙 때는 완전히 실패했지만 이번엔 뭐 크게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사실 피칸 파이는 나 같은 초보자가 제대로 만들기 어렵다. 내 미국인 친구는 피칸 파이는 은근히 만들기 까다로워 그냥 속편하게 사 먹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피칸 파이를 제대로 만들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남편은 우리 식구가 맛나게 먹으면 그걸로 된 거란다.






얼마 전 길을 나섰다가 어느 구간에서 차가 갑자기 막히길래 무슨 일인가 해서 봤더니, 푸드 뱅크에서 무료 음식 상자를 받기 위해 늘어선 자동차 줄 때문이었다. 전 세계가 다 마찬가지이지만 요즘 미국 경기도 많이 어렵다 보니 푸드 뱅크를 찾는 가정이 급격하게 늘었다고 들었는데, 내가 자주 다니던 이 길에도 푸드 뱅크가 새로 생긴 것이다. 남편도 나도 조그만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 틈틈이 기부를 해 왔지만, 올해의 경우는 기부를 해도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삶의 고단함이, 절박함이, 가난이 이전보다 더 가까이에서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현재 사람들이 처한 어려움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잊지말고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내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는 감사하고 즐겁고 행복한 날이기를 원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살아갈 것인지 고민해보는 그런 날이기도 했으면 한다.
우리 모두에게 해피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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