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이 지나면 나는 곧바로 12월을 준비한다.
연휴 동안 아이들에게 한국에 계신 가족과 잊지 말아야 할 몇몇 고마운 분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게 한다. 미국의 코비드 바이러스가 묻어갈까 조심스러워 올해는 건너뛸까도 고민해 보았는데, 남편 왈 한국에서도 택배는 다 받고 있고 카드가 한국에 도착하여 집으로 배달되기까지 또 며칠이 소요되므로 카드에 남아 있는 미국의 바이러스는 소멸될 거란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카드는 늘 아들내미가 직접 고른다. 이건 누구한테 보내는 카드, 저건 누구한테 보내는 카드... 제 딴에는 나름 다 의미가 있는 선별이다. 한국말로 성탄 인사와 새해 인사를 쓰게 하는데 이때는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 시험대가 되기도 한다. 일단 종이를 한 장씩 줘서 카드에 쓸 메시지를 쓰게 하고 철자나 문법상 틀린 것은 내가 고쳐준다. 그리고 카드에 그대로 받아 쓰게 한다. 아이들은 나름 심혈을 기울여서 볼펜으로 꾹꾹 눌러쓰지만 내 눈엔 개발새발이 따로 없다. 이 시점에서부터 머리끝에 살짝 열기가 올라오며 뚜껑이 들들 거리지만 꾹 참으며 애써 웃어 보인다. 그래 참 잘했어.

평소에도 늘 할 말이 많은 아들내미는 빈약한 한국말이라도 쓰고 싶은 말이 역시나 많다. 그리고 글로 미쳐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그 옆에 그림으로 따로 표현한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나에게 설명을 해 주는데 나름 디테일이 살아 있고 의미도 있다. 주로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갖다 주시는 내용. 자신의 희망 사항이렸다. 그 다음은 딸내미 차례. 무뚝뚝한 딸내미는 제 성격 그대로 딱 필요한 말만 쓴다. 좀 더 길게 써보면 어떨까?라고 넌지시 얘기해보면, 그 이상 어떻게 쓰냐며 이 정도면 자기의 마음을 충분히 담은 거란다. 사춘기 딸내미가 '기꺼이' '이렇게라도' 카드를 써주는 것만도 고마워해야 한다. 심지어 '사랑해요'라고까지 덧붙여 써 주었으니 그 이상 뭘 더 바랄까.







틈나는 대로 집안 곳곳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미고 있는데 이것은 연중 내가 가장 최선을 다하는 프로젝트이다. 한 해를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의미있게 마무리하고 싶은 기분이랄까. 그래 올해도 아주 잘했어! 이렇게 되뇌이면서 말이다.
결혼 초에는 유난스럽게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나를 남편은 무척이나 신기해 하였다. 반대로 이 좋은 크리스마스를 무미건조하게 받아들이는 남편을 나 역시 신기해하였다. 소위 말하는, 서울에 딸만 셋 있는 집에서 자란 성인과 경상도에서 아들만 둘 있는 집에서 자란 성인 간에 발생한 문화 충격이랄까. 그러다 남편은 서서히 나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오히려 나보다 더 크리스마스를 챙긴다. 올해도 남편은 몇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 장식이나 아이들 선물로 좋은 딜이 온라인에 뜨면 나에게 먼저 달려와 의견을 묻곤 한다.




작년 이맘 때 우리 가족에겐 몇 가지 어려운 일들이 좀 있었다. 이전부터 예견되었던 일들이 이때 즈음 확 터져버린 것이었다. 남편으로서는 신경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고 집안의 양축인 나는 겉으로 평정을 유지하고자 애를 썼다. 가족회의를 하면서 아이들과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고맙게도 아이들은 의젓한 태도로 그 상황을 받아들였다. 우리 가족은 이전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자 노력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대체로 평탄하게 살아왔다고 생각되는 우리 가족에게 이 정도의 위기는 어쩌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예방 백신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백신의 부작용은 예상보다 짧게 지나갔다.
언제나 평탄한 그런 삶이란 없다. 모든 사람의 일생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반복되면서 진행된다. 새옹지마, 호사다마, 전화위복... 수천년 동안 인류의 선배들이 겪고 깨달은 바를 우리도 반복하여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경험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각자의 몫일 것이다. 일 년이 지난 2020년 12월, 내 마음이 평온하다. 크리스마스는 코 앞으로 다가왔고 우리 가족 모두 기분 좋게 살짝 들떠있는 상태이다.
코비드 때문에 온 세상은 힘겹게 굴러가고 있지만, 내년이면 분명 모든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 믿는다.
12월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는 것..
앞으로 다가올 기쁨에 미리 준비하고 감사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