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피아노 전공을 하지 않은 내가 굳이 직접 가르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일단 경제적인 부분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돈 들어가는 곳은 많아지는데 이곳 미국의 예체능 레슨비는 내 기준에서 비싸다. 약간 관점을 달리하면, 한국의 레슨비가 저렴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가르치는 선생님, 즉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그동안 들인 노력과 비용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어쨌든 미국의 시장 구조상, 개인 레슨을 받으려면 많은 지출을 감당해야 하는데 아이가 둘인 우리 집은 아무래도 사교육비에 대해서 늘 신중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만 한다. 나는 어릴 때 10년 동안 피아노를 배웠던 경험을 활용해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주변에 피아노를 전공한 친구들의 조언으로 아들을 직접 가르쳐 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딸아이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딸아이에게 처음으로 개인 레슨을 시켜 본 것이 피아노였다. 아이는 처음에는 신나 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아노에 흥미를 잃어갔다. 집에서 연습을 전혀 하지 않고 있으니 발전이란 게 없었고, 그런 딸아이에게 나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3년째 되던 해에, 나는 화를 억누르고 아이에게 한 가지 감정 섞인 제안을 하였다. 앞으로 6개월 동안, 레슨 받는 곡들을 매일 10번씩, 주 5일 동안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연습하면, 지금부터 6개월 후 피아노 레슨을 그만둘 수 있다고 말이다. 한 주에 레슨 받는 곡들이 2-3개 정도 되었으니 하루에 2-30개는 연습해야 하는 것이었다. 단, 한 주를 못 채우면 피아노 레슨을 그만두는 시기는 정해진 날짜보다 한 달 뒤로 미뤄진다는 조건도 뒤따랐다. 아이는 새벽부터 일어나 분노의 연습을 해댔고, 결국 6개월의 연습 기한을 다 채워버렸다. 그렇게 나는 아이가 정말로 피아노를 배우기 싫어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고, 결국 3년 만인 4학년 때 피아노 레슨을 그만두게 하였다. 덕분에 마지막 6개월 동안 아이의 피아노 실력은 일취월장하였다. 지금은 아이가 플루트를 좋아하여 학교 밴드부에서 나름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데, 그래도 피아노를 하면서 악보 보는 것을 배운 경험이 플루트 배울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본인도 인정하고 있다. 결국 자기한테 맞는 악기가 따로 있는 것이었다.
이런 피곤한 경험 탓에 자연스럽게 아들에게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기본적인 악보나 읽을 수 있게 하자 정도의 낮은 목표를 갖게 되었고, 그 정도면 까짓 내가 가르쳐도 되겠다 싶었다.

내 시절엔 바이엘, 체르니 30, 체르니 40, 체르니 50... 이런 순서로 배웠다. 내 주변에 피아노 전공한 엄마들이 좀 있는데, 요즘은 교재가 이전과 달라졌다며 다른 책들을 권해 주었다. 딸아이는 'Alfred's Premier Piano Course'라는 책을 가지고 배웠고, 나는 아들에게 'John Thomsom's Piano Course'라는 책을 가지고 가르치고 있다. 전통 피아노 클래식이 아니라 쉽게 편곡된 대중적인 곡들로 채워져 있는데, 두 책 모두 미국에서 피아노 교재로 많이 쓰이는 것 같다.
단순히 악보를 읽고 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요즘에는 음악의 본질과 기초에 충실하도록 피아노 교재가 구성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들의 레슨에 앞서 미리 악보를 보며 예습을 하게 되고, 새로운 음악 기호가 나오면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어떻게 잘 설명해 주어야 하나 고민을 하는 등 본의 아니게 내가 피아노 공부를 새로 시작한 느낌이 든다. 나는 음계를 ‘도레미파솔라시'로 배웠는데, 이 곳에서는 모든 악기를 영어식 음계 'CDEFGAB'로 가르치니 수업 중 나의 실수가 잦을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이것도 나에겐 배움이며 훈련이 되겠다.
“ 오른손으로 '미'.. 아니 아니 'E' 쳐야지 'E' “
아이를 가르치다 보면 내가 피아노 배웠던 시절의 기억이 수시로 떠오른다. 나는 유치원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피아노를 배웠었다. 방과 후 피아노 학원에 들려 친구들과 같이 놀았던 시간들은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피아노 학원은 배움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실내 놀이터였다.
피아노 학원에서는 일 년에 한 번씩 조선일보 대강당을 빌려 연주회를 개최했었다. 무대 뒤에서 내 순서를 기다리던 극도의 긴장감, 그 혼미함은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다. 솔직히 나는 피아노에 재능이 없었고 흥미도 없었다. 성실하긴 한 편이라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서 가끔 입상을 하기는 하였는데, 5학년인가 6학년 때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평소와 달리 죽어라 연습을 했더니, 조선일보에서 개최하는 큰 대회에서 은상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깨달았다. 재능이 없는 사람이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면 은상까지는 받는구나. 하지만 그 이상을 올라서기는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만일 나에게 재능이 있었다면 나는 금상이나 대상을 받았을 것이다. 반대로 재능 있는 사람은 나처럼 노력 안 해도 은상 정도는 거뜬히 받을 것이다. 무엇을 하게 되든, 내 타고난 재능이 무엇인지 빨리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어쨌든, 피아노는 아니었다.
엄마는 내가 피아노를 계속 배우기를 바라셨지만,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굳이 전공을 하지도 않을 건데 왜 피아노를 배워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던 나는 돈도 시간도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억에 엄마는 무척 속상해하시며 아빠랑 얘기해보라 하셨고, 늘 그렇듯이 아빠는 내 주장을 충분히 들으시고는 "너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며 내 편을 들어주셨다. 그 이후 나는 우리 집 피아노 뚜껑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육중한 검은색 호루겔 피아노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지금까지 친정집 거실 구석에서 40년이 넘는 세월을 묵묵히 버텨내고 있다.
다시 아들 얘기로 돌아오면, 아들도 피아노에 소질이 있어보이진 않는다. 그래도 아직은 피아노가 싫다고 그러진 않는다. 비교대상이 없어서 그런지 자신은 피아노를 꽤 잘 친다고 믿고 있다. 아들의 사춘기 반항이 시작될 때까지는 계속 엄마표 레슨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양질의 레슨은 아니지만, 아이와 함께 보내는 이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것은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