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다녀간 며칠 후 이번에는 한국에서 조카가 왔다. 보스턴에 있는 대학에 유학 중인데, 팬데믹으로 인하여 그동안 한국에서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듣다가 이번 학기부터 대면 수업이 가능하게 되어 미국에 들어온 것이다. 한국에서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조카는 이곳에서 특별히 시차 적응을 할 필요는 없는 듯 보였다.
조카가 보스턴에 도착한 지 이틀 후 눈폭풍이 왔고, 아이들 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버렸다.



습한 눈은 아니어서 다행히 정전이 되는 일은 없었다.



오후에 눈이 그치자마자 남편과 조카, 아들내미는 집 밖으로 나가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다 큰 남조카가 와 있는 데다 아들내미도 슬슬 힘쓰는 일이 가능해지니 마음이 든든하다. 아, 이래서 옛날에는 자식을 많이 낳았나 보다.

눈을 다 치우고 난 후 형아랑 노는 아들내미.


또 하루가 간다.
초승달이 떠오른 겨울 하늘에 내 눈이 시리다.


눈폭풍이 온 다음날이 토요일이라
언제나 그렇듯 우리 가족은 산행을 하였다.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타고 지나가는
중년의 여성분들이 있었는데
나중에 나도 시도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이곳 사람들은 여러모로 나를 자극시키곤 한다.
그리고 주일날 아침, 나는 안타까운 연락을 받았다. 암투명 중이던 성당 자매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불과 며칠 전에만 해도 우리는 문자를 주고받았었는데 말이다.
- 애들 방학하고 시간 나면 수다 떨러 와요. 그래도 사람 만나고 약속 잡고 하면 마음이 좀 설레어서 낫더라고요. 보고 싶어요.
그때 그냥 얼굴을 보러 갔었어야 했다. 밀린 일들, 해야 할 일들, 이런 거 저런 거 따지지 말고 말이다.
자매는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으며, 이전에도 몇 번 그랬듯이 며칠 후면 퇴원할 것이라 모두들 믿었었다. 나는 다급하게 문자를 보냈었다. 자매가 괜찮다는 장문의 문자를 보내오길 기다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내 문자에 대한 답변은 더 이상 없었다. 자매는 그렇게 떠나버렸다.
장례식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였다. 모두들 황망해하였고, 안타까움과 그리움에 눈시울을 붉혔다.

장례식을 마치고 나오면서 위를 올려다보니 차가운 밤하늘이 처연하기만 했다. 아마도 내 마음이 그러했을 것이다. 자매가 그렇게 걱정하던 어린 두 아이들이 불쌍하고 가엽게만 느껴졌다.
너무 젊은데,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왜일까? 삶이 살아지는 방식은 늘 미스터리인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저 저 하늘처럼 말없이 나의 달과 별을 품고 살아가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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