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상

유럽 도시 기행 1 - 유시민

얼마 전에 또 다른 방구석 여행을 마쳤다. 

이번에는 유시민 작가가 쓴 <유럽 도시 기행>이다. 이 책은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에 대한 여행기이다. 일단 사람들의 평을 좀 살펴보았는데, 아무래도 정치, 경제, 역사에 해박한 유 작가에 대한 기대감과 사람들이 일반적인 여행기에서 읽게 되는 감성 간의 미묘한 부조화에 때문인지 호불호가 좀 있는 듯했다. 나는 역사를 좋아하는지라 기왕 읽는 거 각 도시에 대한 역사 이야기가 많이 담겼으면 하는 바람에 이 책을 구매해 보았다. 유럽 도시 여행이라는 소재로 유 작가가 어떤 식으로 여행기를 풀어 나갈지 무척이나 궁금하였다.

 

고맙게도 작가는 각 도시에 대한 역사 및 세계사적 의미를 세세하게 짚어나갔다. 물론 짧은 책 안에 그 장구한 도시 이야기를 다 담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시도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가볍게 훑어보라고 써낸 책일 테니까. 알쏭달쏭하고 헷갈리는 역사 이야기나 지명이 나오면 바로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도 하면서 오랜만에 유럽 역사 공부를 다시 해보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 성향과 관련된 몇 가지 인상적인 부분이 나온다.

작가는 여행시 몇 가지 원칙을 고수한다는데, 약탈 문화제의 경우 일부러 찾아가서 보지 않는다는 원칙이 그중 하나이다. 나는 여행할 때 이런 원칙은 고려조차 해본 적이 없다. 물론 불편한 마음이 한 구석에 있긴 하겠지만 어떻게 일석 이조의 기회를 자발적으로 차 버리지? 싶어 놀라웠다. 그리고 이 책을 쓰기 위해서는 웬만하면 다녀올 법한데도 예전에 가서 보았을 때 별 감흥이 없었던 곳이면 아무리 유명 관광지라고 해도 그냥 패스해 버린다. 읽으면서 내가 탄식할 지경이다. 참으로 유 작가스럽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문장 하나하나를 읽다 보면 마음에 드는 것에 대해서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오랜 시간 감상에 빠져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특유의 마땅찮아하는 표정을 지으며 비판하는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 워낙에 명료하고 정확하고 솔직한 문장을 써서 그럴 것이다. 

 

작가는 각 도시를 아래와 같이 정의 내리고 있다.

아테네는 멋있게 나이들지 못한 미소년.

로마는 뜻밖의 발견을 허락하는 도시.

이스탄불은 탄색에 가려진 무지개. (탄색? 사전에 의하면 꺼리는 기색이란다.)

파리는 인류 문명의 최전선.

 

이 중 파리를 인류 문명의 최전선으로 본 이유가 궁금했는데 그건 바로 에펠탑 때문이다. 작가는 세 가지 측면에서 에펠탑이 있는 파리가 지구촌 문화수도의 자격이 있다고 언급했는데, 이 부분은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듯하다. 

 

째, 에펠탑은 과학혁명의 산물이다. 세계박람회장 관문을 만들기 위한 건축 공모를 할 때 프랑스 정부는 '기술적 진보와 산업 발전을 상징할 기념물'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둘째, 에펠탑은 공화정이라는 프랑스 정치제도의 특징을 체현하고 있다. 왕이나 교황이 취향 따라 만든 게 아니라 공모 절차와 전문적 평가를 통해 디자인을 결정했으며 전문가와 비평가들이 아니라 대중이 좋아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셋째, 에펠탑은 자유와 평등, 인권의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고대와 중세의 왕궁이나 교회와 달리 에펠탑은 개인이 디자인한 예술품이며 노예 노동이나 강제 노동 없이 축조했다. 디자인을 설계한 에펠은 물론이요 과학자, 수학자, 엔지니어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물론 에펠탑이 지어진 그 시대에, 위와 같은 조건을 완벽하게 지켰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당시 이러한 발상을 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뜻일 것이다.

 

책을 덮었을 때, 나는 아직 가보지 못한 이스탄불을 나의 버킷 리스트에 넣기로 하였다. 매력적인 여행지로 막연하게 알고는 있었지만, 매력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는 도시인 듯 보였다. 읽는 내내 심장이 떨리는 기분이었다. 끊임없이 동서양 두 문명이 충돌해 왔고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곳인데 어찌 가보고 싶지 않을까. 사족이지만, 처음 미국 와서 알게 된 자유분방한 터키 출신 엄마가 우리 집을 방문했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돼지고기 만두를 대접했던 기억이 났다. 그 엄마는 당황했지만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자신은 이슬람 신자라 돼지고기를 못 먹는다며 양해를 구하였다. 나의 무지와 무식함을 몇 년째 반성 중에 있다. 

 

 

 

 

다음 시리즈도 나올 예정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빈, 프라하, 부다페스트, 드레스덴 도시 여행기일 것이라고 한다. 도시 이름만 들어도 어느 시대의 어느 사건 이야기가 나올지 막연하게나마 이미지가 그려진다. 2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