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문 1 - 강원도 양양
아이들이 방학을 하자마자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출발하였다. 아이들은 5년 만에, 나는 3년 만에 방문하는 한국이었다.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 꿈같은 6주의 시간을 보내고 왔다. 나는 2-3년마다 꾸준히 방문해 온 것 같은데 한국은 그때마다 크게 변해 있었다. 그래서 늘 그 낯섦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유창한 한국말을 쓰면서(아니 실은, 한국말도 어버버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기본적인 것들을 묻고 다녀야 했다.
양가 부모님은 눈에 띄게 늙어 계셨다. 거동이 불편해진 친정 엄마는 얼마 전 요양원에 들어가셨고 나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엄마를 면회하기 위해 몇 차례나 택시를 타고 외진 길을 달려야만 했다. 건강하셨던 외할머니의 모습을 기억하던 우리 아이들은 침대에 누워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눈시울을 붉히며 훌쩍거렸다. 각오한 일이었지만 우리 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부모님들은 나이 들고 쇠약해 가셨다. 슬프기도 하지만 '인생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어 마음이 숙연해진다. 처음 몇 주는 엄마와의 대면 면회가 가능하였지만 7월 중순에는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면서 비대면 면회만 허락되었다. 떠나는 마지막 주에는 그마저도 불가능하여 영상 통화로 엄마와 작별 인사를 해야만 하였다.
모처럼 한국에 왔는데 엄마가 없는 빈집에서 지내야 하는 나로 인해 언니와 형부, 친척 어른들은 유독 가슴 아파하셨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의 극진한 사랑으로 유명했던 송씨 집안 막내딸이었다. 이 집안에서 한번 막내는 영원한 막내인가 보다. 어린 시절 내가 받았던 관심과 깊은 애정은 지금까지도 늘 한결같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 아이들에게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이모들 이야기만 나와도 표정이 싹 달라진다. 이모들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것이다. 그만큼 언니들의 조카 사랑은 말도 못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코로나로 인해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였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팔순을 앞둔 나의 이모와 고모를 이번에 만나 뵙지 못하고 온 것도 너무나 안타깝다. 전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가 다들 예전과 달리 힘이 없으셨다. 몸뿐 아니라 마음도 부쩍 약해지신 것 같았다. 다음에는 무리를 해서라도(그때는 코로나도 잠잠해지겠지!) 꼭 찾아뵈야겠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는 가급적 많은 친구들을 만날 계획을 세웠었다. 대전, 전주, 부산 이렇게 지방에 살고 있는 친구들의 얼굴도 보러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대부분 전화를 통해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미국에서도 수시로 소식을 주고받는 사이인지라 크게 새로울 것은 없었다. 다만 같은 하늘 아래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달라졌다. 몇십 년을 이어온 내 소중한 인연에 감사함을 느낀다. 정말 좋은 친구들이고, 이들로 인해 나 스스로 그동안 참 잘 살아왔구나 싶다. 지금은 다들 직장과 아이들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몸이지만 10년 후에는 훨씬 여유롭고 홀가분하게 함께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자 이제, 사진들을 보면서 한국에서 보낸 시간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록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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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모르겠으나 이번에 한국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길게 느껴졌다. 공항에 도착하여 티켓팅을 하려는데 직원이 남편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 혹시 내일 비행기를 탈 생각은 없으신가요? 대신 일인당 800불 돌려드려요.
우리 4식구이면 3200불이다. 정말 매혹적인 제안이었다. 아마도 비행기가 오버부킹이 된 듯하였다. 공항 근처 호텔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공항에 다시 나오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린 거절하였다. 요즘 하도 변수가 많이 생기다 보니, 코로나 테스트를 다시 받는 것도 문제였고(그러다 결과가 제때 안 나오면? 혹여 양성이라도 나오면?), 다음 항공편이 원활하게 운행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금 3200불을 단번에 거절할 정도로 이번 한국행은 우리에게 무척이나 절실했던 것 같다.
이번에 처음으로 뮌헨을 경유하였다. 루프트한자의 기내 서비스는 나름 괜찮았고 경유지인 뮌헨 공항도 크고 깔끔하였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뮌헨 시내를 하루정도 여유롭게 거닐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만의 장거리 여행인데다 아무래도 유럽을 거쳐가는 길이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회하는 길이고 비행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다 보니, 이번 한국으로의 여정은 심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고 지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나와 남편은 미리 계획해 놨던 운전 면허증 재발급 및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리고 자동차를 렌트하여 강원도 양양으로 여행을 떠났다.
양양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는 친구의 특별한 선물 때문이었다. 우리 식구가 한국을 방문한다고 하자 양양의 한 호텔을 예약해 준 것이었다. 가족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라고 말이다. 덕분에 몇십 년 만에 (꼭 해보고 싶었던)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서 유명 맛집 투어도 해보았다. 과연 TV에서 보던 대로, 내가 기억하던 예전의 고속도로 휴게소가 아니었다. 깔끔하고 편안했으며 각 휴게소의 특색이 느껴져서 흥미로웠다.


서울과 가까운 거리였지만 모처럼의 강원도 여행이고 해서 우리는 호텔에 들어가기 전 추가로 1박을 미리 더 머물기로 하였다. 그래서 예약한 곳이 동호해변 바로 앞에 위치한 카라반이었다.


트레일러 분위기라 아이들이 재미있다며 너무나 신나 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저 침구가 마음에 들어서 미국 올 때 사 올 생각도 했었는데 막판에 깜박하고 못 사왔다. 아쉽다.



아직 학교가 방학을 안해서인지 동호해변은 꽤 한산하였다. 그래서 쾌적하고 좋았던 곳이다. 저 멀리에서 몇몇 젊은이들이 서핑 강습을 받고 있었다. 젊으니 좋구나. 나도 함께하고 싶었다.


저녁으로는 째복으로 유명한 맛집에서 식사를 하였다. 째복은 강원도에서 조개를 일컫는 말이란다. 지금 사진으로 다시 봐도 씁, 침이 고인다.


저녁 식사 후 남편과 바닷가를 산책하였다. 모든 게 여유로워서 며칠은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우리는 친구가 예약해 둔 쏠비치 호텔로 향했다. 쏠비치 양양은 스페인의 가우디 구엘 공원을 컨셉으로 지어진 곳이라 한다. 그래서 꽤 화려하고 이국적인 느낌이 났으며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친구는 우리 네 식구를 위해 룸 2개를 예약해 두었다. 침대에서 뒹굴뒹굴 편히 자라고 말이다. 여행을 갈 때마다 딸아이의 가장 큰 불만이 침대를 함께 써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1인 1 침대 덕분에 딸아이는 너무나 행복해하였다.








낮에는 호텔 수영장과 프라이빗 비치에서 수영을 하며 놀았다.
원래 저녁으로 호텔 뷔페를 먹으려고 예약까지 했었는데 갑자기 남편이 속이 안 좋다고 하였다. 찬물에서 놀았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호텔 내 다른 한식당에서 남편은 된장찌개를 시켜 먹었다. 고급진 호텔 뷔페를 기대하였다가 잔뜩 실망한 딸아이는 마지못해 김치찌개를 시켰다(그래도 나중에 서울에서 이모가 뷔페를 몇 번이나 데려가 주었으니 이 날의 아쉬움은 풀렸을 것이다. ^^). 그런데 한 숟갈 떠먹어보더니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원래 김치찌개가 이렇게 맛있는 거냐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늘 내가 요리한 밍밍한 김치찌개만 먹어오던 딸이었다. 미안하다~ 딸아. 이후 한국에 있는 동안 딸아이는 종종 김치찌개를 시켜먹곤 하였다.





저녁 식사 후 우리는 호텔 주변을 산책하였는데 날씨가 쾌적한데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주변 분위기도 참 좋았다. 야외 바베큐 식당도 있었는데, 사람들에게는 이 역시 특별한 추억이 되겠다 싶었다.


호텔 지하에 편의 시설이 잘 되어 있었는데 말로만 듣던 설빙도 먹어보고 중앙 닭강정도 사 먹어 볼 수 있었다.


양양에서 꿈같은 휴식을 취한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고, 오는 길에는 가평 휴게소에 들렀다. 그리고 이곳 가평 파리 바게트에서만 판매한다는 갓평만남샌드를 사봤다. 달달하고 고소한 맛이 생각보다 고급졌다. 나는 단 맛을 별로 안 좋아하는지라 많이는 못 먹었지만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맛이었다.
강원도 여행을 정말 오랜만에 해 보았는데(생각해보면 어릴 적에는 강원도에 자주 놀러다녔는데... ), 고속도로가 잘 되어 있어서 오고가는 길이 정말 편했다. 내가 기억하는 옛날의 구불구불한 그 강원도 길이 아니었다. 게다가 도로 위의 색깔 유도선은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되어 감탄 또 감탄하였다. 강원도의 동해 바다는 청량하고 아름다웠다. 신선하고 맛난 음식은 지금도 종종 생각난다. 친구 덕에 우리 가족 모두에게 좋은 추억이 더해졌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강원도 나들이를 또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