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11번째 생일이었다.
그 전날 아침에 한인마트까지 열심히 내달려 아들이 원하는 초콜릿 케이크를 사서 냉장고에 고이 모셔두었다. 아들이 찜해놓은 선물은 이미 몇 주전에 세일할 때 사서 포장까지 해 놓았던 터였고 음식도 아들이 원하는 메뉴를 식당에 주문해서 차리면 되는 것이니 생일 당일날 미역국 외에는 특별히 더 준비할 것도 없었다.

45불짜리 Tous les Jours 케이크.
저 사자와 판다는 당연히 설탕으로 만든 것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좀 비싸더라도 기꺼이 산 것인데.... 그냥 플라스틱 장식이었다. 배신감이 든다. 케이크 맛도 지난번 딸내미 생일날 샀던 케이크와 똑같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맛나다고 좋아라 한다. 한국에 가게 되면 내 기필코 맛난 케이크를 종류별로 사 먹이리라.

딸의 옛 플루트 선생님 Phyllis가 고맙게도 매년 아들아이의 생일에 맞춰 생일 축하카드를 보내주고 있다. 사실 여기에는 사연이 좀 있다. 우리는 딸아이가 플루트 레슨을 시작할 때 Phyllis를 처음 만났었다. 그때 Phyllis는 내 손을 잡고 있던 다섯 살 난 아들에게 큰 관심을 보였었다. 아들 녀석은 어릴 적부터 생글생글 잘 웃는 데다 낯가림도 적어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잘하는 편이다. 심지어 누나와 같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둘이 체육시간이 겹칠 때면 딸아이 반 친구들이 "저기 쟤 너 동생이지? 되게 귀엽게 생겼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나름 귀염상이기까지 하다. 사회생활에서 일단은 점수를 따고 들어가겠단 표현을 아들내미에게 써도 괜찮을 듯싶다. 어쨌든 Phyllis는 유독 아들내미를 이뻐하였고 집에 올 때마다 아이를 찾았으며 조금이라도 더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였다.
몇 년 전, 마침 레슨을 위해 우리 집에 들른 그녀에게 아들이 쪼르르 달려가더니 곧 있으면 자신의 생일이라며 자랑을 해댔다. 정확하게 며칠이냐고 묻자 아들은 6월 3일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아...”라며 복잡한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 보였다. 옆에서 나는 그 표정의 의미를 읽어 내고자 하였는데, 그다음에 나온 말을 듣고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과 같구나.
Phyllis는 지금은 딸아이의 레슨을 맡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씩 안부를 주고받고 있으며, 고맙게도 자신이 살고 있는 코네티컷에 놀러 오라고 초대까지 하였다. 기회가 되면 이번 여름에 오랜만에 만나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Phyllis는 그 이후 늘 그랬듯이 아들내미의 얼굴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볼 것 같다.

그 다음 날,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는 5학년 아이들 반만 따로 모여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사실 이번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 수업을 선택하게 되면서 아들내미는 원래 다니던 학교가 아닌 다른 초등학교에 배정이 돼 버렸다. 한 학기만 임시로 있다가 원래 학교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남은 학년도 온라인 수업을 듣기로 결정하면서 결국 이 학교에서 졸업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학교 건물도, 선생님과 친구들도 낯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 만남의 시간에서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낸 듯했다.

딸아이와 달리 아들 녀석은 어릴 때부터 먹는 양이 매우 적고 편식도 심한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또래에 비해 키가 작고 체격도 야리야리하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덩치로 늘 상위 탑 5 안에 들었다면 아들 녀석은 아마도 하위 3 안에 들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아들 녀석은 전혀 개의치 않아했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봐왔던 친구들인지라 올려다보는 그 눈높이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다. 심지어 자신보다 훨~씬 작은 친구도 몇몇 있기는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새 학교에 가보고는 반 친구들 중에 자신이 가장 작다는 사실에 좀 놀랐던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과 새 친구들 사이에서 문득 각성을 하게 된 것이다.
- 엄마, 이젠 좀 많이 먹어야겠어. 그러면 앞으로 더 크겠지?
다행히 아들 녀석은 그 와중에 기 죽지 않고 꿋꿋했다. 키는 자기가 가장 작았지만 반 친구들과 팔근육을 재봤을 때 자신의 것이 가장 컸다고 나에게 자랑했다. 그래 아들아. 앞으로도 그런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가렴. 아무래도 그게 너의 최대 강점인 것 같다.

이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아들 아이의 눈썹 이야기 좀 해야겠다.
아들아이는 신기할 정도로 속눈썹이 길다. 게다가 긴 속눈썹 끝이 위로 살짝 올라가 있으니, 여자로서 부럽단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당사자에게는 마냥 좋기만 한 것이 아닌가 보다.

2년 전 식당에서 온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바라본 아들의 눈썹이 어딘가 어색하였다. 내가 속눈썹을 유심히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으니 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였다.
- 눈썹이 너무 길어서 잘랐어.
- 뭐!? 언제? 뭘로?
- 어제 가위로.
어떻게 감히 눈썹을 자를 생각을 했을까. 이유를 물어보니 눈썹이 너무 기니까 무겁고 신경쓰여서라고 대답하였다. 너무 놀란 나는 그렇게 눈썹을 잘라봤자 눈썹은 다시 자라나게 돼 있고 혹시나 눈을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절대로 혼자서 그렇게 자르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나중에 엄마한테 이 이야기를 하니 막 웃으시며 엄마 역시 그 나이때 속눈썹이 너무 길다고 가위로 잘라버려서 어른들한테 많이 혼나셨단다. 그러면서 당신 손주답다고... 그것마저 자랑스러워... 하셨다...

이제는 눈썹을 자르지는 않지만, 가끔 속눈썹이 빠지거나(속눈썹이 길어서 세로로 눈 안에 들어가면 빼내기도 쉽지 않다!) 한두 개씩 눈을 찌를 때가 있어 신경이 쓰이나 보다. 그래서 한번은 내 눈썹 집게를 사용하여 눈썹을 올려 주었는데, 나름 아들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요즘 매일 아침마다 저렇게 눈썹 집게로 속눈썹을 집어 올리고 있다. 웃기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나중에 눈썹 파마라도 해주어야 하나 싶다.